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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사이, 좋게

[강판권 교수님] 사이, 좋게

by 강판권 교수님 2020.11.02

세상에서 가장 좋은 관계는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사이좋은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불편하지 않은 상태다. 사이가 좋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유사 이래 일어난 크고 작은 문제는 대부분 좋지 않은 사이 때문에 발생했다. 나무도 사이가 좋아야만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무를 관찰하면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를 자주 만난다.
나무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만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정상적인 삶은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의 본성은 종류마다 다르다. 키가 큰 나무도 있고, 키가 작은 나무도 있다. 은행나뭇과의 은행나무는 키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는 47미터이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살고 있다. 특히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도 가장 키가 크다.
물푸레나뭇과의 쥐똥나무는 떨기나무다. 떨기나무는 10미터 이하의 나무를 의미한다. 나무 중에는 가지를 옆으로 뻗는 것도 있고, 뻗지 않는 것도 있다. 가지를 옆으로 쭉 뻗는 나무 중에는 층층나뭇과의 층층나무가 있다. 아파트의 층처럼 층층이 뻗어서 생긴 나무 이름이다. 반면 버드나뭇과의 양버들은 가지를 옆으로 뻗지 않고 위로 뻗는다.
인간은 나무들이 본성대로 살지 못하고 서로 붙어 있는 것을 연리목(連理木) 혹은 연리지(連理枝)라 부른다. 더욱이 사람들은 나무의 이 같은 현상을 남녀의 사랑, 부부애, 효자의 상징으로 숭상하고 있다. 그래서 전국에는 숭배하는 연리지가 적지 않다. 예컨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에 위치한 은해사 입구에는 느티나무의 가지가 상수리나무의 줄기에 붙어 있다. 두 나무 아래에는 ‘사랑나무’라는 푯말을 세워놓았다.
우리나라의 연리지 숭상 문화는 중국 『후한서(後漢書)·채옹전(蔡邕傳)』과 당나라 백낙천의 『장한가(長恨歌)』 등에서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연리지는 나무의 입장에서 최악의 사이다. 인간이 나무의 가장 좋지 못한 사이를 가장 좋은 사이로 호도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선이다. 인간의 이 같은 나무에 대한 인식은 나무와 인간의 사이도 좋지 않다는 증거다.
생명체 간 좋은 사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용’ 혹은 ‘중도’의 철학이 절실하다. 그간 인간이 추구한 관계는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불행을 낳았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는 그간 인간이 추구한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대도시는 인간에게 편리한 공간이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바뀐다. 반면 대도시의 발달로 공동화 지역으로 변해버린 농촌은 코로나19 이전까지 인간에게 불편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안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농촌은 사이가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금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강제로 사람 간의 거리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기존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제로 거리를 조정하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강제로 거리를 조정하더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확진자 수의 추이가 이를 증명한다. 이제 인류가 스스로 좋은 사이를 만들기 위해서 거리를 조정하는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