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가을을 떠나보내며
[권영상 작가님] 가을을 떠나보내며
by 권영상 작가님 2020.11.05
가을이 떠나고 있다. 오랜 만남을 뒤로 한 채 떠난다. 가을도 사람의 사랑처럼 작별이어도 그리 매정한 작별이 아니다. 머뭇거리거나 가야 할 시간을 놓치거나 그러면서 떠난다.
잠깐 산에 오르기 위해 아파트를 나선다. 길 위에 가을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서둘러 떠나야 할 만큼 가을은 갈 길이 먼 모양이다. 길이 온통 느팃잎으로 뒤덮여있다.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길을 따라 가을이 마을로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떠날 때는 이처럼 확연히 눈에 띈다.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가을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길 위에 내려선다. 혼자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모습도 곱지만 마치 순례자들처럼 여럿이 내려서는 모습도 아름답다. 건듯 부는 바람을 못 이겨 아주 뭉텅 쏟아져 내리는 결단력 있는 모습에선 비장미를 느낀다. 그들을 보내는 이 한나절의 빛나는 햇살마저 없다면 어쩌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문득 발 앞에 떨어진 가을 한 장을 주워든다.
멀리서 볼 땐 흠 하나 없는 가을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벌레에 갉힌 이빨 자국과 바람에 찢긴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빛깔도 붉고 고울 줄만 알았는데 아니다. 불그죽죽한 데다 숱한 작은 점들로 얼룩져있다.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몸짓으로 길을 떠나는 가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이렇겠다. 상처 많은 몸으로 길을 떠나고 있겠다.
이곳을 찾아와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을 넘기느라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날을 바람과 폭염과 장맛비에 시달렸을까. 싫건 좋건 험난하다면 험난한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았으니 그만한 상처쯤 다 있겠다. 없다면 오히려 말짱한 몸으로 돌아가는 게 이상하겠다.
나는 가을이 먼 길 끝으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서 산길로 들어선다.
요 얼마 전이다. 숲에서 개똥지빠귀를 봤다. 몸매가 갸름하면서도 날렵한 지빠귀가 비좁은 잣나무 숲 사이를 빠르게 비껴 날고 있었다. 먼 캄차카나 사할린쯤에서 폭풍과 싸우며 날아온 경험 많은 새라 날갯짓만으로도 그 새가 개똥지빠귀라는 걸 금방 알았다. 그때 개똥지빠귀는 떠나간 여름새들과 낙엽 진 이 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돌아왔던 거다.
정말이지 그 사이 아침저녁으로 듣던 새소리를 못 듣고 살았다. 뻐꾸기니 꾀꼬리, 물레새, 후투티 같은 여름새들은 모두 다 그 무렵에 떠나갔다. 산은 알게 모르게 몸을 비우고 있었다. 새가 없고 낙엽이 다 진 뒤의 산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산을 한 바퀴 돌고 낙엽 지는 산을 내려온다. 해마다 가을을 보내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오래 알아온 친구나 가까운 친척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산처럼 거대한 것들은 비워낸 자리가 눈에 띄게 크다. 그러나 산은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이내 또 다른 것으로 채운다. 좀은 냉철한 기운으로, 그러니까 혹한의 바람으로, 눈으로 제 빈자리를 채워 삼동을 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우자는 말이다. 말이야 멋있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렵다. 그게 어려운 까닭은 마음만 비운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운 마음으로는 중심이 흔들려 자칫하다가는 풍파를 만나 파선하기 십상이다. 그 빈자리에 다른 무엇으로 채워 넣을 꼿꼿한 냉철함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차디찬 바람과 싸우면서도 노하기는커녕 휘파람 불듯 노래할 수 있는 겨울나무의 높은 고독이라면 어떨까. 떠나가는 가을 앞에서 다가올 인생의 겨울을 모처럼 생각한다.
잠깐 산에 오르기 위해 아파트를 나선다. 길 위에 가을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우리가 잠든 밤에도 서둘러 떠나야 할 만큼 가을은 갈 길이 먼 모양이다. 길이 온통 느팃잎으로 뒤덮여있다.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길을 따라 가을이 마을로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떠날 때는 이처럼 확연히 눈에 띈다.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가을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길 위에 내려선다. 혼자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모습도 곱지만 마치 순례자들처럼 여럿이 내려서는 모습도 아름답다. 건듯 부는 바람을 못 이겨 아주 뭉텅 쏟아져 내리는 결단력 있는 모습에선 비장미를 느낀다. 그들을 보내는 이 한나절의 빛나는 햇살마저 없다면 어쩌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문득 발 앞에 떨어진 가을 한 장을 주워든다.
멀리서 볼 땐 흠 하나 없는 가을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벌레에 갉힌 이빨 자국과 바람에 찢긴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빛깔도 붉고 고울 줄만 알았는데 아니다. 불그죽죽한 데다 숱한 작은 점들로 얼룩져있다.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몸짓으로 길을 떠나는 가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이렇겠다. 상처 많은 몸으로 길을 떠나고 있겠다.
이곳을 찾아와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을 넘기느라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날을 바람과 폭염과 장맛비에 시달렸을까. 싫건 좋건 험난하다면 험난한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았으니 그만한 상처쯤 다 있겠다. 없다면 오히려 말짱한 몸으로 돌아가는 게 이상하겠다.
나는 가을이 먼 길 끝으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서 산길로 들어선다.
요 얼마 전이다. 숲에서 개똥지빠귀를 봤다. 몸매가 갸름하면서도 날렵한 지빠귀가 비좁은 잣나무 숲 사이를 빠르게 비껴 날고 있었다. 먼 캄차카나 사할린쯤에서 폭풍과 싸우며 날아온 경험 많은 새라 날갯짓만으로도 그 새가 개똥지빠귀라는 걸 금방 알았다. 그때 개똥지빠귀는 떠나간 여름새들과 낙엽 진 이 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돌아왔던 거다.
정말이지 그 사이 아침저녁으로 듣던 새소리를 못 듣고 살았다. 뻐꾸기니 꾀꼬리, 물레새, 후투티 같은 여름새들은 모두 다 그 무렵에 떠나갔다. 산은 알게 모르게 몸을 비우고 있었다. 새가 없고 낙엽이 다 진 뒤의 산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산을 한 바퀴 돌고 낙엽 지는 산을 내려온다. 해마다 가을을 보내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오래 알아온 친구나 가까운 친척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다.
산처럼 거대한 것들은 비워낸 자리가 눈에 띄게 크다. 그러나 산은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이내 또 다른 것으로 채운다. 좀은 냉철한 기운으로, 그러니까 혹한의 바람으로, 눈으로 제 빈자리를 채워 삼동을 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우자는 말이다. 말이야 멋있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렵다. 그게 어려운 까닭은 마음만 비운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운 마음으로는 중심이 흔들려 자칫하다가는 풍파를 만나 파선하기 십상이다. 그 빈자리에 다른 무엇으로 채워 넣을 꼿꼿한 냉철함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다. 차디찬 바람과 싸우면서도 노하기는커녕 휘파람 불듯 노래할 수 있는 겨울나무의 높은 고독이라면 어떨까. 떠나가는 가을 앞에서 다가올 인생의 겨울을 모처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