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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새들의 생존 법칙

[김민정 박사님] 새들의 생존 법칙

by 김민정 박사님 2020.11.09

설계도 허가도 없이 동그란 집을 짓고 산다
작은 부리로 잔가지 지푸라기 물고와
하늘이 보이는 숲속에서 별들을 노래한다
눈대중 어림잡아 아귀를 맞추면서
휘어져 굽은 둥지 무채색 깃털 깔고
무게를 줄여야 산다 새들의 저 생존법칙
대문도 달지 않고 문패도 없는 집에
잘 익은 달 하나가 슬며시 들어와
남몰래 잉태한 사랑 동그마한 알이 된다
울타리 없는 마을 등기하는 법도 없이
비스듬히 날아보는 나는 자유의 몸
바람이 지나가면서 뼛속마저 비워냈다
-김복근, 「새들의 생존 법칙」 전문

11월 초, 아름답게 물들었던 단풍도 어느새 잎들을 떨어뜨리고, 아직 남은 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고 있다. 헤르만 헷세의 「가을날」이란 시를 외워본다. ‘숲이 금빛으로 타고 있다./ 상냥한 그이와, 여러 번/ 나란히 걷던 이 길을/ 나는 혼자서 걸어간다./ 이런 화창한 날에 오랜동안 품고 있던/ 행복과 괴로움이, 향기 속으로/ 먼 풍경으로 녹아들어 간다.// 풀을 태우는 연기 속에서 농부의 아이들이 껑충거린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래를 시작한다.’ - 「가을날」 전문.
또 그의 「낙엽」이란 시도 외워본다.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합니다./ 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합니다./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 외에는/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다지도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가을이 되어 조락을 맛보려고 합니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가만히 끈기 있게 달려 있으십시오.//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고 거역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내버려 두십시오./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서/ 집으로 불어 가게 하십시오.’ - 「낙엽」 전문.
가을은, 특히 늦가을은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을 가장 잘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늦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면서 부활을 꿈꾸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도 다시금 느끼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뭇잎이 다 진 나무에 덩그라니 남아있는 새집을 바라보니, 「새들의 생존 법칙」이란 시조도 생각난다. 늦가을 찬서리 속에서 먹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치, 까마귀 등이 먹으라고 감나무에 감을 다 따지 않고 몇 개 정도는 남겨둘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너그러운 마음을 함께 느끼면서…
새들의 생존 법칙은 자유롭다. 그들은 ‘설계도 허가도 없이 동그란 집을 짓고 살고, 하늘이 보이는 숲속에서 별들을 노래하고, 무게를 줄여서’ 사는 새들. 그러나 그들의 집은 ‘대문도 달지 않고 문패도 없는 집이지만 잘 익은 달 하나가 슬며시 들어오고, 남몰래 잉태한 사랑 동그마한 알이 된다. 또한 울타리 없는 마을 등기하는 법도 없이, 비스듬히 날아보는 자유의 몸’인 것이다. 그들의 삶은 자유로와 보인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평가 기준이 그들에게 그대로 맞을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눈에는 그들의 삶은 조금은 자유로와 보인다. 그들의 생존법칙은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많이 욕심내면 무거워서 날지 못하니까…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에, 너무 무거워서 결국은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적당히 누린다면 불행한 삶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