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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할망구와 꽃멀미

[한희철 목사님] 할망구와 꽃멀미

by 뉴시스 기사·사진 제공 2020.11.18

가까이 지내는 분이 팔순을 맞았습니다. 아직도 소녀 같은 모습과 웃음이 여전한데, 어느새 여든의 고개에 올라섰습니다. 환갑이며 칠순 팔순 심지어 구순에 이르기까지 요즘이야 따로 잔치를 하는 일이 드문 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모임 자체를 삼가고 있는 상황,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팔순을 축하했습니다. 따로 준비한 순서지는 없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 시간들이 더없이 정겹고 따뜻했습니다.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가 향수를 사지 않아도 나올 때는 향수 냄새가 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행복과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듬뿍 전해 받았으니까요.
사촌들 간의 정이 형제처럼 돈독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하는지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동안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진을 모아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돌아가며 건네는 인사말에도 사랑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좋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 손자도 있었고, 밀려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연신 울컥하는 바람에 눈물로 인사를 대신하는 손녀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막내인 초등학교 4학년 손녀의 인사가 모두의 진심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언젠가는 죽잖아요. 죽으면 천국에 갈 거고요. 우리 가족은 천국에 가면 꼭 찾아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그날 나는 덕담을 전하며 ‘할망구’와 ‘꽃멀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이를 칭하는 말 중에 ‘망구’(望九)가 있습니다. ‘망구’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81세를 이르는 말입니다. ‘망팔’(望八)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로, 71세를 가리키듯이 말이지요. 바로 그 망구에서 나온 말이 ‘할망구’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 중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데 왜 유독 할머니를 가리키는 할망구라는 말만 있는 것일까 싶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환갑도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옛 시절, 남자보다는 여자의 평균 수명이 높았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배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어서 할머니를 지칭하는 ‘할망구’라는 말만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멀미 중에는 차멀미, 뱃멀미, 비행기 멀미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꽃멀미’도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진한 향기에 취하여 일어나는 어지러운 증세를 꽃멀미라 합니다. 여든을 넘어 맞이하는 시간이 꽃멀미의 시간이 되기를, 마침 시를 쓰는 분이니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눈부시게 바라보시라고 축하를 했습니다. 같은 여든이어도 할망구로 사는 것보다는 꽃멀미를 하며 사는 삶이 훨씬 더 아름다울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