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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단풍단풍

[김민정 박사님] 단풍단풍

by 김민정 박사님 2020.11.23

풀벌레 울음들이 산기슭을 풀어낸다
제 갈 길 가다 말고 주춤대던 갈바람이
사는 건 혼돈이라고 어둠을 부추긴다

골짝으로 흘러가는 계곡물은 지줄 대고
온 산에 달빛 들어 색이 색을 덧입힌다
할 말을 삼켜가면서 나도 한창 익어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온몸을 다 토해냈다
내 안의 속울음이 이리도 붉었으랴,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 졸시, 「단풍단풍」 전문

올가을엔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유난히 잎이 아름답게 물드는 벚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학교 교정에는 단풍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다른 해에는 별 관심 없이 지냈는데, 올가을에는 단풍이 유난히 예쁘게 들어 자꾸만 눈길이 갔고, 사진도 여러 컷 찍었다. 그 풍경을 보며 예전에 쓴 「단풍잎에 앉은 청산별곡」이란 작품을 되뇌어보기도 했다.
‘이마 맞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른 날/ 산허리 돌아가다 문득 눈 준 차창 밖에/ 화들짝, 놀란 청산이 붉디붉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단풍 든 적 있었을까/ 저리도록 아름다움 심어준 적 있었을까/ 지나온 나직한 삶들 돌아돌아 뵈는 날// 명치끝을 아려오는 저 고운 황홀처럼/ 누군가의 가슴속을 물들일 수 있었다면// 아, 정녕 청산별곡 속 나의 생은 푸르리’
‘코로나19’ 덕분(?)에 공기가 맑아져 맑은 햇빛을 많이 쐰 탓일까. 교정에서 맞는 마지막 가을이라 생각해서 눈길이 자주 간 것일까. 다른 해는 이맘때쯤엔 화단에 신경 쓸 일이 없어 잘 쳐다보지 않았는데, 올해는 화단에 꽃무릇을 심느라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교정 뒤뜰에서 바람에 팔랑이는 노란 은행잎도,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잎도, 땅에 떨어져 땅 별처럼 빛나는 단풍잎도 유난히 고왔다.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온몸을 다 토해내’는, 어쩌면 그것은 ‘내 안의 속울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리도 붉은 울음, 그것을 속으로 울고 있다면 그래,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없겠다. 생이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연소하며 가는 것이니, 탈 수 있는 한 태우고 또 태우는 수밖에 없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오늘 아침에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여름 장마만큼 세찬 빗줄기가 밤새 창문을 두드렸다. 낙엽들이 막혀 물이 하수구로 잘 빠지지 않는 것일까. 도로에는 물이 고인 물웅덩이가 많아 차들이 물속으로 달리는 경우와 물이 심하게 튀기는 곳이 많았다. 택시라도 잡기 위해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지나는 차들에게 물벼락을 맞은 경우도 많았을 것 같다. 이 비가 그치면 단풍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이고, 앙상한 나목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겨울로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김장도 해야 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수능일이 12월 3일, 2주 밖에 남지 않았다. 고3 학생과 학부모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도 많이 불 것이다. 고3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이지만 일반인들도 감염이 확산될지 모르니 미리미리 철저히 조심해야겠다. 개개인이 긴장하고 주의하며 만남도 자제하고 모임에도 덜 나가며 스스로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