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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어느 구름에 비 묻어올지 모르는 법

[정운 스님] 어느 구름에 비 묻어올지 모르는 법

by 정운 스님 2020.11.24

일전에 불교계 대표 신문에 기고문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 기고문이 문제성 있는 발언으로 이슈화되더니, 이에 그치지 않고, 항의 전화에 문제가 점점 심각해졌다. 결국 그 신문의 편집장이 사과를 하였다. 게다가 그 글을 쓴 작가까지 곤혹을 치렀다. 작가 글에 문제를 삼는 것을 언론 통제라고 볼 것인지?, 편집장이 미리 검토하지 못한 점이 잘못된 것인지? 여러모로 난제이다.
필자는 작가와 편집장, 두 사람을 다 알고 있다. 모두 피해 갈 수 없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두 사람의 힘겨운 모습이 안타까웠다. 좋지 않은 일이 미리 준비했다가 일어나는 법은 없다. 어느 결에 발생하는 것이요, 본인이 수습하기에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저만치 앞서가 있다. 삶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는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어느 늦은 날밤, 대함大含(1773∼1850) 스님이 홀로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이때 한 도둑놈이 칼을 들고 들어와서 스님을 위협했다.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이 쳐다봤다. 도둑놈이 칼을 들이대자, 스님이 먼저 물었다.
“내게 목숨을 원하는가? 돈을 바라는가?”
“돈이든 무엇이든 값나가는 거를 주시오. 그러면 해치지 않겠습니다.”
스님은 도둑놈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랍을 뒤져서 돈과 물건 가치가 있는 것은 다 가져가라고 던져주었다.
도둑놈은 주섬주섬 스님이 주는 대로 들고 나왔다. 그때 스님은 또 태연스럽게 말했다.
“나가면서 문을 잘 닫고 나가주시오. 혹 악한이 또 들어올지 모르니까”
훗날 이 도둑놈은 사람들에게 ‘수년간 남의 집을 들락거렸지만, 집주인이 도둑을 보고 놀라지 않고 너무 태연해서 내가 더 놀랐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우리나라 스님들의 일화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고려 말기, 나옹 혜근(1320∼1376)은 40세 초반 무렵, 해주 신광사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이때 홍건적이 침입해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갔으나 스님은 대중을 안심시키고 평상시와 똑같이 법을 설하고 정진하였다. 하루는 적군 수십 명이 절에 들어왔으나 스님은 매우 태연자약하였다. 오히려 홍건적이 법당에 향을 사르고 스님께 절을 하고 물러갔다. 나옹스님은 끝까지 신광사를 떠나지 않고 절을 지켰고, 이후 홍건적이 사찰에 와도 사람과 물건을 해치지 않았다.
필자가 앞에서 예를 든 스님들은 모두 의연한 자세로 삶을 견뎌내고 있다. 앞의 작가와 편집장처럼 ‘어느 구름에 비 묻어올지 모르는 게 인연’이라고 삶에 어떤 고난이 닥쳐올지 모르는 법이다. 고난에 쓰러지거나 억울해하면 인생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태연자약함을 배울 필요도 있다. 두려움이나 좌절, 비난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자.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여기면, 금방 잠잠해질 것이다. 이 또한 무상無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