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한희철 목사님] 저녁이 더 아름답고 복되기를

[한희철 목사님] 저녁이 더 아름답고 복되기를

by 한희철 목사님 2020.12.30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모두가 다르게 받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시간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주고, 힘없는 자에게는 적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부유한 자에게는 부에 해당하는 긴 시간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에 해당하는 짧은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느냐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군 훈련소에서의 시간은 지루할 만큼이나 더디 갑니다. 서너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싶어 슬쩍 시계를 보면 겨우 이삼십 분이 지났을 때가 허다하지요. 추운 겨울에 보초를 서다 보면 시계 초침도 얼어붙은 듯 시간이 기어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시간은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떨리는 마음으로 팔짱이라도 끼고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저만치 가 있곤 해서 돌아서는 마음에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식전 일이 반나절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식전이란 아침밥을 먹기 전의 시간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일이 반나절 일을 하는 것에 버금간다는 뜻입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들이 압니다. 식전 시간이 무엇 길까 싶지만, 막상 일을 해보면 다릅니다. 해가 퍼져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힘들게 긴 시간 일하는 것보다는, 선선한 아침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능률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게으른 머슴은 저녁나절이 바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머슴의 하루 일과가 얼마나 바쁠까 싶은데, 저녁때가 되면 더 바빠지는 머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린 머슴이 그렇습니다. 일 중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 할 일을 미룬 채 저녁을 맞으면 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으른 머슴은 칠월이 바쁘다’는 말도 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쉬는 칠월을 두고 혼자 바쁜 것 역시 남들 일할 때 일하지 않고 일을 미룬 탓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힘에 부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나라가 어서 부강한 나라가 되어,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평안하고 걱정이 없는 노년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찾아드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내 노년의 분주함이 젊었을 적 게으름의 결과여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입니다.
‘나이 들어 따뜻하게 지내고 싶으면 젊은 시절에 난로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독일 속담이 있습니다. 제때 난로를 준비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제때의 바늘 한 땀이 아홉 번의 수고를 던다’(A stitch in time saves nine)는 미국 속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때 꿰맨 한 땀과 나중의 열 땀이 충분한 대조를 이룹니다.
코로나19로 낯선 시간들이었지만 2020년이 다 기울어 갑니다. 우리의 삶이 저녁이 더 아름답고 복된 삶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해를 보내며 소원 하나 마음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