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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소처럼 우직하게

[이규섭 시인님] 소처럼 우직하게

by 이규섭 시인님 2021.01.04

올해는 소띠 해, 신축년(辛丑年)이다. 가축인 소는 식구와 마찬가지다. 인간과 소가 가족 같은 사이임을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 독립영화 ‘워낭소리’다. 2009년 영화관에서 할아버지와 소의 30년 동행을 눈시울 적시며 봤다. 어떤 연예인은 지금도 비디오로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한다.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최원균 할아버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들에 나가고 장에도 간다. 수족과 마찬가지다. 무뚝뚝한 할아버지에게 무덤덤한 소는 환상의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딸랑딸랑 소리 내는 워낭은 최 노인과 소가 교감하는 맥박이다. 누렁소는 평균 15년밖에 살지 못하나 최 노인이 키우는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30년이란 긴 세월을 더불어 살았다.
기력이 다 된 누렁소가 큰 눈을 힘없이 껌뻑일 때 죽음을 감지한 할아버지는 낫으로 코뚜레와 목줄을 자른다. “좋은데 가거라. 고생하고 애먹었다”고 위로해 준다. 매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경북 봉화군은 2011년 상운면 하눌리에 워낭소리공원을 조성하여 관광객을 맞는다. 수레에 앉은 최 노인을 누렁이가 끄는 모습의 조형물, 최 노인과 소 이야기와 영화 속 대사를 새긴 비(碑)들이 즐비하다. 최 노인은 2013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고, 이삼순 할머니(81)는 2019년 이승을 떠났다. 영화 속 주인공들 모두 하눌리를 떠나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소는 농경사회의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수단이었고 몫 돈 마련의 비상금고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소를 팔아 자식 대학 보냈다고 하여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도 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다. 사납지 않고 사람에게 순종한다.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에 녹아들어 관습과 풍속을 만들었다.
세시 풍속에 따르면 새해 들어 처음 맞는 소의 날에는 소에게 영양가 많은 콩으로 쇠죽을 쑤어 먹였다. 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방아도 찧지 않고 고기를 써는 일을 삼가는 의미로 도마질도 하지 않았다. 새끼를 낳으면 금줄을 치고 덕석을 입혀 주었으며 봄이 오면 외양간을 먼저 치웠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한다. 십우도(十牛圖)는 소를 찾아 떠나는 마음의 열 가지 수련 순서다. 만해 한용운은 만년에 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본성인 소를 찾아 묵상했다.
소와 관련된 속담에 어울리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우리 주변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듯 분수 모르고 설치는 교만 한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정이 불공정한데도 합리화 궤변을 늘어놓으며 ‘쇠뿔도 담김에 빼려’는 속전속결 무리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올해도 코로나 방역과 선거 일정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우연에 기대거나 서둘러선 안 된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여 조삼모사(朝三暮四) 잔머리를 굴리고 손바닥 뒤집듯 조변석개(朝變夕改)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직하게 뚜벅뚜벅 한 해를 성실하게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