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정운 스님] 잘되는 집안은 그 이유가 있다

[정운 스님] 잘되는 집안은 그 이유가 있다

by 정운 스님 2021.01.05

북송北宋 때, 재상 범중엄(范仲淹, 989∼1052)은 2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은 개가 했다. 불우한 환경인데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먹을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매일 죽 한 단지를 만들어 4개로 나누어 하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다. 그는 재상이 되어서도 소박한 생활을 지속했고, 수많은 이들에게 베풀었다.
범중엄은 자신의 환경을 개척해 학문을 닦았고, 덕행이 후대까지 전하는 인물이다. 그는 늘 “천하가 걱정하기 전에 먼저 걱정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岳陽樓記].”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아들[堯夫]이 있었다. 어느 해, 그는 아들 요부에게 그의 고향인 고소姑蘇에 가서 보리 오백 섬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요부는 보리를 배에 실어 집으로 향했다. 마침 배가 단양丹陽에 정박했을 때, 요부는 친구 석만경을 만났다. 친구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부모님과 아내가 한꺼번에 죽어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경제력이 부족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네.”
요부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싣고 가는 보리를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실직고하였다. 이 말을 듣고 범중엄이 말했다.
“매우 잘했구나.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범중엄과 아들은 어려운 사람의 처지에 의견이 일치했다. 그가 죽었을 때 남겨놓은 재산은 없었지만, 후손들에게 청렴과 덕행을 남겼다. 그의 후손은 800년[중국이 사회주의가 되기 이전] 동안 가문이 번창했다.
필자가 범중엄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들에게 베푸는 마음과 공덕을 말하고 싶어서다. 내가 사는 동네가 한옥이 많은데,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도 알 겸 종종 산책을 나간다. 어느 날, 산책길에 한 한옥 집 대문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구경하는 집”, “쉬어가는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저 집에 들어가면, 커피나 차를 파는 곳이겠지’라고 생각하고 그 집에 들어섰다[주변에 이런 곳이 많이 있다].
그런데 나의 착각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현관이 있고, 현관 옆으로 작은 쪽길이 있었다. 그 쪽길 양쪽은 수석이 놓여 있고, 쪽길 막다른 곳에 접어드니 큰 아름드리나무와 수많은 화분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말 그대로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정원 저 끝에는 ‘휴식터’라는 팻말 아래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대체로 한옥집 대문마다 ‘CCTV 설치되어 있음, 접근금지’라고 써놓고, 자기 집을 기웃거리는 것조차 거절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일이 당연지사고, 우리들은 이 점에 익숙해 있다.
하여튼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선 이들에게 정원을 공개하고 쉼터를 제공하는 주인의 깊은 아량에 마음이 흐뭇하다. 잘 되는 집안은 다 이유가 있나 보다. ‘내 것’이라는 나만의 소유가 아닌 ‘내 것이 너 것도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신축년을 시작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