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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키 작은 기린과 인간

[한희철 목사님] 키 작은 기린과 인간

by 한희철 목사님 2021.01.13

‘모순’(矛盾)이란 말의 뜻을 우리는 잘 압니다. 창과 방패라는 단순한 말이지만, 행동이 서로 어긋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이 방패는 굳고 단단해서 세상의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또 창을 자랑하여 “이 창의 날카로움으로 어떤 방패든지 못 뚫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소?” 그러자 상인은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릇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못 뚫을 게 없는 창은 함께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조금 장황하게 모순 이야기를 한 것은 키 작은 기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키 작은 기린’이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마치 ‘날씬한 하마’ ‘잽싼 거북이’처럼 납득하기가 어려운 표현입니다. 하지만 키 작은 기린 이야기는 실제로 있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평균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키 작은 기린 두 마리가 잇따라 발견이 되었습니다. 기린의 평균 신장은 4.8m로 작은 편에 속하는 기린도 사람의 키보다는 적어도 두 배가량이 큽니다. 이번에 발견된 기린의 신장은 2.85m와 2.6m로 측정됐습니다. 그야말로 미니 기린으로 그들의 모습은 마치 말의 몸통에 기린 머리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왜소증은 근친교배가 흔한 개나 소 돼지 등 가축에서는 종종 발견되지만 야생동물 세계에서는 거의 없는 현상으로, 특히 기린 중에서 키 작은 기린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과학자들도 한결같이 믿을 수가 없다고, 조작된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키 작은 기린이 나타난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작위 돌연변이나 유전적 병목현상이라 부르는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 등을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린은 보통 태어난 첫해에 66%가 사망할 정도로 생존율이 낮은 동물인데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밀렵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을 하고 말았습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기린을 멸종 위기 ‘취약’인 보호종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2016년 기준 아프리카 전체에 10만 마리 미만이 서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친교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왜소증으로 이어졌을 것이라 추측을 하는 것입니다.
키 작은 기린 이야기를 들으며 겹쳐 떠오르는 것은 갈수록 왜소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름답고 의젓하고 고마운 모습을 점점 잃어버려, 갈수록 초라하고 거칠어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그것을 최우선의 가치 기준으로 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비록 가난하다 해도 사람 사는 맛과 멋이 있는 삶이 그리운 것이 저만의 바람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