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옷을 벗어준 사람
[한희철 목사님] 옷을 벗어준 사람
by 한희철 목사님 2021.01.27
원래가 그랬던 것일까요 계속되는 코로나19로 더욱 유난스러워진 것일까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대개가 사납고 어수선하고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소식들입니다. 서로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싸우고 거친 말로 흠집을 내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마음이 아뜩해지고는 합니다. 마땅히 지켜져야 할 상식이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린 모습 앞에서는 서글픔을 넘어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중에 전해진 마음 따뜻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고운 눈 송이송이 딴 데 떨어지지 않네’라는 의미의 ‘호설편편 불낙별처’(好雪片片 不落別處)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는 제가 곱다고 고운 땅을 가려 앉지 않습니다. 할머니 홀로 사는 외딴집 지붕에도 솜 이불처럼 내리고, 가축들 춥게 잠든 외양간 위로도 내리고, 밭둑 어딘가 거름으로 쓰려고 모아둔 두엄더미 위에도 내립니다.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내려, 내려앉은 그 땅을 고운 땅으로 만듭니다.
기사를 대하기 전 먼저 보게 된 것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누군가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멀리서 찍었지 싶은 사진 속 두 사람을 거반 지울 정도의 함박눈이었는데, 사진을 가득 채운 눈은 이미 마음을 따뜻하게 할 만큼 고운 눈처럼 보였으니까요.
너무 춥다며 커피 한 잔을 사 줄 수 있겠느냐고 다가온 노숙자에게 지나가던 한 신사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노숙자가 입고 있는 얇은 수면바지와 그가 신고 있는 얇은 운동화로는 한 겨울의 추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눈여겨본 것이었겠지요. 한 잔의 커피로는 그의 추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신사가 노숙자에게 전한 것은 외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있던 장갑도 벗어주었고, 지갑 속에 있는 돈도 건네주었습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전해준 것이지 싶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총총 사라져버렸습니다. 옷을 전해 받은 노숙자도, 사진을 찍은 기자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지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자신이 지닌 것을 아낌없이 전해준 그 마음도 고맙지만,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남으로 자신을 남기지 않은 모습에 더욱 감동을 받게 됩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서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도 만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 곁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갑니다. 그들은 당시의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위험을 느꼈을 수도 있고, 종교적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쓰러진 사람 곁으로 다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보아 준 이는, 당시 믿음이 좋다는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벗어 노숙자에게 입혀주고 있을 때, 주변에 있는 교회나 성당 사찰 위로도 분명 함박눈은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전해진 마음 따뜻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고운 눈 송이송이 딴 데 떨어지지 않네’라는 의미의 ‘호설편편 불낙별처’(好雪片片 不落別處)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는 제가 곱다고 고운 땅을 가려 앉지 않습니다. 할머니 홀로 사는 외딴집 지붕에도 솜 이불처럼 내리고, 가축들 춥게 잠든 외양간 위로도 내리고, 밭둑 어딘가 거름으로 쓰려고 모아둔 두엄더미 위에도 내립니다. 무엇 하나 가리지 않고 내려, 내려앉은 그 땅을 고운 땅으로 만듭니다.
기사를 대하기 전 먼저 보게 된 것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누군가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멀리서 찍었지 싶은 사진 속 두 사람을 거반 지울 정도의 함박눈이었는데, 사진을 가득 채운 눈은 이미 마음을 따뜻하게 할 만큼 고운 눈처럼 보였으니까요.
너무 춥다며 커피 한 잔을 사 줄 수 있겠느냐고 다가온 노숙자에게 지나가던 한 신사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노숙자가 입고 있는 얇은 수면바지와 그가 신고 있는 얇은 운동화로는 한 겨울의 추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눈여겨본 것이었겠지요. 한 잔의 커피로는 그의 추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신사가 노숙자에게 전한 것은 외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있던 장갑도 벗어주었고, 지갑 속에 있는 돈도 건네주었습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전해준 것이지 싶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총총 사라져버렸습니다. 옷을 전해 받은 노숙자도, 사진을 찍은 기자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지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자신이 지닌 것을 아낌없이 전해준 그 마음도 고맙지만,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남으로 자신을 남기지 않은 모습에 더욱 감동을 받게 됩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서에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도 만나 거반 죽어가는 사람 곁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갑니다. 그들은 당시의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위험을 느꼈을 수도 있고, 종교적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쓰러진 사람 곁으로 다가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보아 준 이는, 당시 믿음이 좋다는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옷을 벗어 노숙자에게 입혀주고 있을 때, 주변에 있는 교회나 성당 사찰 위로도 분명 함박눈은 내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