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설렘 없는 설
[이규섭 시인님] 설렘 없는 설
by 이규섭 시인님 2021.02.05
옛 설이 그립다. 시대와 의식의 변화로 그때 그 시절의 설은 돌아오기 힘들다. 되돌릴 수 없기에 더 그립다. 어린 시절의 설은 설렘이었다. 나프탈렌 냄새 솔솔 풍기는 새 옷은 설빔의 상징이다. 명절 아니면 새 옷을 입기 어렵던 시절이다. 운동화는 신기루 같은 신발이다. 신작로를 힘차게 달리는 꿈을 꾸며 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고 설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요즘 아이들은 운동화가 몇 켤레씩은 된다. 연예인이 아니라도 드레스 룸을 갖출 정도로 옷들이 넘친다. 말랑말랑한 떡가래를 뚝 떼어 조청에 찍어 먹으면 달고 쫄깃한 맛이 혀끝을 감쳤다. 바삭바삭한 한과는 달착지근 눈처럼 녹았다. 송홧가루 다식은 입안 가득 솔 향을 뿜는다. 떡가래 대신 떡볶이를 수시로 먹을 수 있고, 초콜릿과 치즈 과자는 일상의 주전부리다. 부침개 대신 피자가 입맛을 바꿔 놓은 지 오래다.
민족대이동도 부쩍 줄었다. 밤새워 귀성표를 구하던 긴 행렬은 흑백 풍경이 됐다. 귀성 인구가 준다는 건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었다는 의미다. 대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성 평등과 노동 형평성 논란 등 명절 후유증이 확산되면서 제사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설날 아침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인 세배를 올렸다. 떡국 상을 물린 뒤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며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권하던 세시풍습이자 미풍양속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공경의 의미로 세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뱃돈을 챙기기 위해 세배를 한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자의 재롱을 보는 낙으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다림이다. 요즘은 수시로 휴대폰 영상 통화로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애틋한 기다림이 예전만 못하다.
설은 같은 언어를 쓰는 단일 문화민족의 동질성이 녹아있는 어울림 축제다. 일제는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설을 없애려 떡을 못 만들게 섣달그믐께는 일주일 동안 떡 방앗간 문을 닫게 하는 횡포를 부렸다. 8.15 광복 이후에는 ‘이중과세’라는 명분으로 음력설을 홀대하는 정책을 폈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채택한 1896년 1월 1일 이후 ‘양력설’과 ‘음력설’이 병존하면서 ‘신정’과 ‘구정’ 논란이 이어지다 겨우 제자리를 찾았는데 너무 쉽게 그 의미를 외면해 아쉽다.
더구나 올 설은 코로나 장벽에 가로막혀 사는 곳이 다른 가족끼리는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세 가족이면 부모 집에 갈 때 누군가 한 사람은 갈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니 역병이 명절의 숨통마저 죈다. 서울 도서관 외벽에 걸린 현수막엔 ‘설 연휴, 찾아뵙지 않는 게 ’효‘입니다’라고 효를 대놓고 왜곡한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미풍양속의 전통이다. 그때 그 시절의 설 분위기 회복은 불가능하더라도 민족의 정서와 얼이 스민 설 명절의 전통적 가치는 지켰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들은 운동화가 몇 켤레씩은 된다. 연예인이 아니라도 드레스 룸을 갖출 정도로 옷들이 넘친다. 말랑말랑한 떡가래를 뚝 떼어 조청에 찍어 먹으면 달고 쫄깃한 맛이 혀끝을 감쳤다. 바삭바삭한 한과는 달착지근 눈처럼 녹았다. 송홧가루 다식은 입안 가득 솔 향을 뿜는다. 떡가래 대신 떡볶이를 수시로 먹을 수 있고, 초콜릿과 치즈 과자는 일상의 주전부리다. 부침개 대신 피자가 입맛을 바꿔 놓은 지 오래다.
민족대이동도 부쩍 줄었다. 밤새워 귀성표를 구하던 긴 행렬은 흑백 풍경이 됐다. 귀성 인구가 준다는 건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었다는 의미다. 대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성 평등과 노동 형평성 논란 등 명절 후유증이 확산되면서 제사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설날 아침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인 세배를 올렸다. 떡국 상을 물린 뒤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며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권하던 세시풍습이자 미풍양속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공경의 의미로 세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뱃돈을 챙기기 위해 세배를 한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자의 재롱을 보는 낙으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다림이다. 요즘은 수시로 휴대폰 영상 통화로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애틋한 기다림이 예전만 못하다.
설은 같은 언어를 쓰는 단일 문화민족의 동질성이 녹아있는 어울림 축제다. 일제는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설을 없애려 떡을 못 만들게 섣달그믐께는 일주일 동안 떡 방앗간 문을 닫게 하는 횡포를 부렸다. 8.15 광복 이후에는 ‘이중과세’라는 명분으로 음력설을 홀대하는 정책을 폈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채택한 1896년 1월 1일 이후 ‘양력설’과 ‘음력설’이 병존하면서 ‘신정’과 ‘구정’ 논란이 이어지다 겨우 제자리를 찾았는데 너무 쉽게 그 의미를 외면해 아쉽다.
더구나 올 설은 코로나 장벽에 가로막혀 사는 곳이 다른 가족끼리는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세 가족이면 부모 집에 갈 때 누군가 한 사람은 갈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니 역병이 명절의 숨통마저 죈다. 서울 도서관 외벽에 걸린 현수막엔 ‘설 연휴, 찾아뵙지 않는 게 ’효‘입니다’라고 효를 대놓고 왜곡한다.
설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미풍양속의 전통이다. 그때 그 시절의 설 분위기 회복은 불가능하더라도 민족의 정서와 얼이 스민 설 명절의 전통적 가치는 지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