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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소[牛], 잘 길들이기

[정운 스님] 소[牛], 잘 길들이기

by 정운 스님 2021.02.16

필자는 출가한지 강산이 4번 바뀌는 세월을 절에서 살고 있다. ‘왜 출가했냐?’고 가끔 질문을 받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글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했으니 뭐 쇼킹할만한 사연이 있겠는가!? 그런데 출가해 살면서 막연하게 과거 전생에도 스님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 지금도 스님으로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당연하고, 다음 생에도 스님으로 살고 싶다. 물론 어머니는 나의 출가로 힘들어하셨고, 반대를 많이 하셨다. 모친은 ‘혹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니…’라는 생각으로 기다리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숙명宿命이란 말 그대로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삶의 길이다. 여기서 숙宿이란 불교에서 전생을 말하는데, 숙명은 숙세의 업業이 되는 셈이다. 수많은 과거 생 동안 지었던 업으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업은 부처님이라도 바꿔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운명運命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운명과 숙명을 같은 단어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운명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삶을 운전해 간다는 뜻이다. 이러던 차에 어느 글에서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요,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다.”라고 하였다. 정확한 출처를 알 수는 없지만, 필자도 이에 동감한다.
그러면 숙명과 운명이 무엇이 다른가를 보자. 부모를 정해서 태어날 수 없다. 또 자식을 선택해서 나을 수는 없다. 신장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몸무게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배우자는 자신이 선택해서 평생을 해로한다.
부모나 자식, 신장은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다이어트를 통해 몸무게는 조절할 수 있으니 이는 운명이라고 본다. 숙명은 피할 수 없지만, 운명은 얼마든지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운명을 개척할 것인가? 주역을 하는 분들도 ‘얼굴의 상이 아무리 좋아도 신체 좋은 것만 못하고, 신체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고 한다. 얼굴과 몸을 고치는 성형이 아니라 마음 고치는 성형수술을 하면서 살자.
불교에 소[牛]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소는 ‘마음’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제자스님과 스승과의 대화이다. 스승이 물었다.
“무엇을 하느냐”
“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보고 있느냐?”
“한 번이라도 나쁜 데 떨어지려고 하면, 단번에 코끝을 잡고 끌어당깁니다.”
“너는 소 기르는 법을 잘 알고 있구나.”
자신이 함부로 나쁜 길로 빠져들면, 고삐를 바짝 당긴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잘 살핀다는 뜻이다. 인간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쉽게 빠져든다. 좋은 습을 길들이기 위해 늘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신축년, 한 해가 시작되었다.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소처럼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