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품의 있는 죽음
[이규섭 시인님] 품의 있는 죽음
by 이규섭 시인님 2021.02.26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 언론인 세 분이 최근 잇달아 타계했다. 퇴직 언론인 단체의 최고령인 김진섭 선배는 향년 104세로 천수를 누렸다. 13년 전 ‘실버 파이팅’ 인터뷰를 할 땐 구순인데도 소주 두 병을 거뜬히 비울 정도로 건강하고 사람과 술을 좋아했다. 8년 전 막내아들이 사는 미국 LA로 거처를 옮겼다. 후배들과 통화하면서 단골집이던 서울의 평양냉면과 돼지고기 수육,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고 전해왔다. 고국을 그리며 살다가 잠들 듯 편안하게 영면했다는 아들의 전언이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뒤 1941년 일본 공동통신기자로 언론계에 몸담았다. 6.25전쟁 땐 제1기 종군기자로 주요 작전지역을 돌며 전황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1958년엔 항공편으로 납북됐다 풀려나는 등 질곡의 역정을 해쳐왔다.
이환의 선배는 민완기자로 활동하다 37세 때 전북 지사로 발탁되어 구태의연한 관료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 넣었다. MBCㆍ경향신문 사장으로 언론 경영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향년 90세로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별세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는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았고 수목장으로 치른 뒤 알려왔다. 가족들만의 장례 선례를 남겼다.
퇴직 언론인 단체의 회장을 지낸 제재형 선배는 부지런하고 건강했는데 갑작스러운 부음에 “어떻게 됐느냐”는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심장 관련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급성폐렴으로 타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향년 87세. 코로나 탓도 있었지만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렀다.
그는 입버릇처럼 사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불러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 기억을 나누고 싶다는 취지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황망히 떠났다. 세 분의 공통점은 치열하게 살다가 간소한 장례를 남긴 아름다운 이별의 주인공들이다. 우리 사회는 행복한 삶(well-being) 못지않게 ‘좋은 죽음(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본보기가 될 것 같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유언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조용하게 장례를 치른 것은 귀감이 될 만하다.
몇 년 사이 간소한 장례식 문화의 확산은 고무적이다. 2년 전 한 여론조사 때 작은 장례식 의향을 묻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족끼리 경건하게 이별 의식을 치르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렵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해진 것도 변화의 흐름이다. 존엄사법이 3년 전부터 시행됐고, 고통만 연장하는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임종 과정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심폐소생술과 같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향서’ 작성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80만 명 넘었다. 품의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유언장 쓰기, 자신의 생을 기록하는 ‘엔딩 노트’ 작성하기, 생전에 지인들과 사전 장례식 치르기 등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웰다잉 활성화도 품의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새로운 현상이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뒤 1941년 일본 공동통신기자로 언론계에 몸담았다. 6.25전쟁 땐 제1기 종군기자로 주요 작전지역을 돌며 전황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1958년엔 항공편으로 납북됐다 풀려나는 등 질곡의 역정을 해쳐왔다.
이환의 선배는 민완기자로 활동하다 37세 때 전북 지사로 발탁되어 구태의연한 관료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 넣었다. MBCㆍ경향신문 사장으로 언론 경영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향년 90세로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별세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는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았고 수목장으로 치른 뒤 알려왔다. 가족들만의 장례 선례를 남겼다.
퇴직 언론인 단체의 회장을 지낸 제재형 선배는 부지런하고 건강했는데 갑작스러운 부음에 “어떻게 됐느냐”는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심장 관련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급성폐렴으로 타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향년 87세. 코로나 탓도 있었지만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렀다.
그는 입버릇처럼 사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했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불러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 기억을 나누고 싶다는 취지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황망히 떠났다. 세 분의 공통점은 치열하게 살다가 간소한 장례를 남긴 아름다운 이별의 주인공들이다. 우리 사회는 행복한 삶(well-being) 못지않게 ‘좋은 죽음(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본보기가 될 것 같다.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유언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조용하게 장례를 치른 것은 귀감이 될 만하다.
몇 년 사이 간소한 장례식 문화의 확산은 고무적이다. 2년 전 한 여론조사 때 작은 장례식 의향을 묻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족끼리 경건하게 이별 의식을 치르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드러내 놓고 말하기 어렵던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발해진 것도 변화의 흐름이다. 존엄사법이 3년 전부터 시행됐고, 고통만 연장하는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임종 과정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심폐소생술과 같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향서’ 작성자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80만 명 넘었다. 품의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가 커지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유언장 쓰기, 자신의 생을 기록하는 ‘엔딩 노트’ 작성하기, 생전에 지인들과 사전 장례식 치르기 등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웰다잉 활성화도 품의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새로운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