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영화 소울: 단풍나무 열매
[강판권 교수님] 영화 소울: 단풍나무 열매
by 강판권 교수님 2021.03.02
영화는 상상력을 키우기에 아주 좋은 친구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즐겨 본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언제나 즐거운 놀이다. 가설극장에서 본 영화가 나의 첫 영화 추억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간혹 영화를 보면 무척 즐겁다. 2021년 1월 20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나는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의 꿈을 실현하는 중 단풍나무 열매가 등장한 장면에서 감동했다.
꿈을 실현 과정에서 단풍나무를 등장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매는 곧 종자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단풍(丹楓)의 ‘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프로펠러처럼 생겼다. 단풍나무가 열매를 이처럼 만든 것은 바람에 잘 날려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나무 목(木)과 바람 풍(風)을 합쳐서 단풍나무를 뜻하는 글자를 만들었다. 단풍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도 아주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사람이 창조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꿈이 실현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몸속에 간직한 단풍나무 열매 같은 종자를 싹 틔우는 것이 바로 꿈의 실현이다. 그래서 영화의 작가와 감독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단풍나무 열매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자신의 몸속 종자를 확인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낸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종자를 확인하는 교육 과정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도 초중등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종자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제를 부과한다. 그중 하나가 나무 관찰 일지다. 즉 학생 스스로 한 그루의 나무를 선정해서 1주일에 2차례 관찰한 것을 사진과 함께 제출하는 과제다. 어떤 장소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 나무가 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과제는 코로나19에도 전혀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과제는 단순히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다. 인간의 삶은 죽을 때까지 몸속의 종자에 싹을 틔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의 과제에 처음에는 잠깐 당황하지만 과제를 수행하면서 점차 많은 것을 깨닫는다.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곧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중국의 고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라 불렀다. 격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에 이른다는 뜻이고, 치지는 앎을 다한다는 뜻이다. 나무에 이르러서 나무의 이치를 아는 것이 곧 격물치지의 공부법이다. 중국 고대 사람들이 실천한 격물치지의 공부법은 퇴계 이황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모든 성리학자들이 실천했다.
단풍나무의 열매를 보기 위해서는 꽃을 관찰해야 하고, 꽃을 보기 위해서는 잎을 관찰해야 하고, 잎을 보기 위해서는 줄기를 관찰해야 하고, 줄기를 보기 위해서는 뿌리를 관찰해야 한다. 한 존재의 삶은 뿌리에서 열매까지 일사불란한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꿈을 실현 과정에서 단풍나무를 등장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매는 곧 종자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단풍(丹楓)의 ‘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프로펠러처럼 생겼다. 단풍나무가 열매를 이처럼 만든 것은 바람에 잘 날려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나무 목(木)과 바람 풍(風)을 합쳐서 단풍나무를 뜻하는 글자를 만들었다. 단풍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도 아주 탁월한 관찰력을 지닌 사람이 창조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꿈이 실현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몸속에 간직한 단풍나무 열매 같은 종자를 싹 틔우는 것이 바로 꿈의 실현이다. 그래서 영화의 작가와 감독이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단풍나무 열매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자신의 몸속 종자를 확인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낸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종자를 확인하는 교육 과정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도 초중등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종자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제를 부과한다. 그중 하나가 나무 관찰 일지다. 즉 학생 스스로 한 그루의 나무를 선정해서 1주일에 2차례 관찰한 것을 사진과 함께 제출하는 과제다. 어떤 장소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 나무가 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과제는 코로나19에도 전혀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과제는 단순히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다. 인간의 삶은 죽을 때까지 몸속의 종자에 싹을 틔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의 과제에 처음에는 잠깐 당황하지만 과제를 수행하면서 점차 많은 것을 깨닫는다.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곧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같은 과정을 중국의 고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라 불렀다. 격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에 이른다는 뜻이고, 치지는 앎을 다한다는 뜻이다. 나무에 이르러서 나무의 이치를 아는 것이 곧 격물치지의 공부법이다. 중국 고대 사람들이 실천한 격물치지의 공부법은 퇴계 이황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모든 성리학자들이 실천했다.
단풍나무의 열매를 보기 위해서는 꽃을 관찰해야 하고, 꽃을 보기 위해서는 잎을 관찰해야 하고, 잎을 보기 위해서는 줄기를 관찰해야 하고, 줄기를 보기 위해서는 뿌리를 관찰해야 한다. 한 존재의 삶은 뿌리에서 열매까지 일사불란한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