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종달새가 돌아올 무렵
[권영상 작가님] 종달새가 돌아올 무렵
by 권영상 작가님 2021.03.04
지하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은 두 갈래다. 나는 늘 집과 조금 더 가까운 3번 출구를 이용한다. 그곳으로 나오면 죽 직진하여 5.6분 거리에 집이 있다. 그런데도 가끔 좀 먼 4번 출구로 나올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조용한 전철 안이 꼼틀, 했다. 옆자리 사내의 호주머니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났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그것도 지하전철 안에서 듣는 종달새 소리라니! 내 귀가 그 소리에 솔깃했다.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종달새 소리가 구름을 벗어난 것처럼 맑고 요란하게 울었다.
사내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호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은 없었던 일처럼 그 이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손잡이에 매달려 침묵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내 귀에선 여전히 그 빗종빗종빗종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전철은 몇 정거장을 더 달렸고, 나는 내가 내릴 역에서 내렸다. 지하 계단을 오르는 내 발길이 나도 모르게 늘 가던 3번 출구가 아닌 4번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내 발이 지난겨울, 눈 속에서 본 보리밭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말이 보리밭이지 그 보리밭이란 한 평 남짓한 대리석 보리밭 화단이다. 화단은 모 학습지 빌딩 마당에 있다. 웬만한 빌딩이라면 그 앞에 제법 호가하는 조각 작품을 세워놓거나 명품 반송쯤 심어놓고 위엄을 과시할 텐데 거긴 다르다. 어떤 때는 목화씨를 심어 하얀 목화 꽃을 보여주고, 어떤 때는 옥수수를, 또 어떤 때는 밀이나 보리가 패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언젠가 그 화단을 돌보고 키우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힘들 때 고향을 생각하시라고…….”
그러라고 고향 정서를 느끼게 하는 씨앗을 심는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분의 말대로 고향을 생각하러 가는 거다. 출구에서 불과 200여 미터. 나는 쉬엄쉬엄 그 보리밭에 당도했다.
그야말로 한 평도 안 되는 쪼끄만 대리석 화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리 이랑이 열두 이랑. 이랑마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혹한을 난 보릿잎에 살짝 손을 대어본다. 보리의 초록물이 내 손에 들 것 같이 싱그럽다.
흙 한 점 디딜 데 없는 이 도시, 종달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압적인 빌딩들, 눈을 감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들, 그리고 시멘트 길을 때리는 구둣발 소리……. 그 속에서도 보리는 그 옛날의 변치 않는 고향 동무들 같이 나를 맞는다. 나는 잠시 보리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아홉 살이거나 열 살쯤의 나로 돌아가는 듯하다.
보리밭을 두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보리밭이 없어지면서 종달새도 고향의 들판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리를 보면 종달새가 떠오르고, 뽀오얀 봄 하늘이 떠오른다. 멧둔지 근처 풀밭에 염소를 매어놓고 돌아설 때면 종달새는 높은 하늘에서 소스라치듯 울었다.
봄 하늘 높은 층계를 딛고 오르며 아침마다 울던 종달새에게 꼭 하나 미안한 것이 있다. 대체 무엇에 쓰자고 그랬는지 보리 이랑에 틀어놓은 종달새 둥지를 보면 따스한 알을 한두 개씩 훔쳐냈다. 철이 없어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랬는지, 왜 미안한 줄 몰랐는지…….
건널목에 초록 신호가 들어온다. 길을 건너는 머리 위 하늘에서 불현 종달새 울음소리가 빗종빗종,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 어느덧 3월이다. 전 같다면 종달새가 돌아올 무렵이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조용한 전철 안이 꼼틀, 했다. 옆자리 사내의 호주머니에서 종달새 울음소리가 났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그것도 지하전철 안에서 듣는 종달새 소리라니! 내 귀가 그 소리에 솔깃했다.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종달새 소리가 구름을 벗어난 것처럼 맑고 요란하게 울었다.
사내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호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은 없었던 일처럼 그 이전의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손잡이에 매달려 침묵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내 귀에선 여전히 그 빗종빗종빗종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전철은 몇 정거장을 더 달렸고, 나는 내가 내릴 역에서 내렸다. 지하 계단을 오르는 내 발길이 나도 모르게 늘 가던 3번 출구가 아닌 4번 출구를 향하고 있었다. 내 발이 지난겨울, 눈 속에서 본 보리밭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말이 보리밭이지 그 보리밭이란 한 평 남짓한 대리석 보리밭 화단이다. 화단은 모 학습지 빌딩 마당에 있다. 웬만한 빌딩이라면 그 앞에 제법 호가하는 조각 작품을 세워놓거나 명품 반송쯤 심어놓고 위엄을 과시할 텐데 거긴 다르다. 어떤 때는 목화씨를 심어 하얀 목화 꽃을 보여주고, 어떤 때는 옥수수를, 또 어떤 때는 밀이나 보리가 패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언젠가 그 화단을 돌보고 키우는 이를 만난 적이 있다.
“힘들 때 고향을 생각하시라고…….”
그러라고 고향 정서를 느끼게 하는 씨앗을 심는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분의 말대로 고향을 생각하러 가는 거다. 출구에서 불과 200여 미터. 나는 쉬엄쉬엄 그 보리밭에 당도했다.
그야말로 한 평도 안 되는 쪼끄만 대리석 화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리 이랑이 열두 이랑. 이랑마다 보리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혹한을 난 보릿잎에 살짝 손을 대어본다. 보리의 초록물이 내 손에 들 것 같이 싱그럽다.
흙 한 점 디딜 데 없는 이 도시, 종달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압적인 빌딩들, 눈을 감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자동차 소음들, 그리고 시멘트 길을 때리는 구둣발 소리……. 그 속에서도 보리는 그 옛날의 변치 않는 고향 동무들 같이 나를 맞는다. 나는 잠시 보리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가 아홉 살이거나 열 살쯤의 나로 돌아가는 듯하다.
보리밭을 두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보리밭이 없어지면서 종달새도 고향의 들판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리를 보면 종달새가 떠오르고, 뽀오얀 봄 하늘이 떠오른다. 멧둔지 근처 풀밭에 염소를 매어놓고 돌아설 때면 종달새는 높은 하늘에서 소스라치듯 울었다.
봄 하늘 높은 층계를 딛고 오르며 아침마다 울던 종달새에게 꼭 하나 미안한 것이 있다. 대체 무엇에 쓰자고 그랬는지 보리 이랑에 틀어놓은 종달새 둥지를 보면 따스한 알을 한두 개씩 훔쳐냈다. 철이 없어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랬는지, 왜 미안한 줄 몰랐는지…….
건널목에 초록 신호가 들어온다. 길을 건너는 머리 위 하늘에서 불현 종달새 울음소리가 빗종빗종, 쏟아져내리는 것 같다. 어느덧 3월이다. 전 같다면 종달새가 돌아올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