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강판권 교수님] 사군자의 오류

[강판권 교수님] 사군자의 오류

by 강판권 교수님 2021.03.15

개화 소식은 사람의 마음을 밝게 만든다.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매실나무의 꽃 매화는 예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받고 있다. 매실나무는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다. 사군자는 인간의 식물에 대한 인격화를 대표하는 개념이다. 식물을 인간 중에서 인격이 가장 높은 ‘군자’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매ㆍ난ㆍ국ㆍ죽을 의미하는 사군자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중국 명나라 때다. 황봉지(黃鳳池)는 『매죽난국사보(梅竹蘭菊四譜)』에서 매ㆍ죽ㆍ난ㆍ국을 ‘사군자’라 불렀다.
조선시대 산수화 중에는 사군자를 만날 수 있지만, 사군자 전체를 그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산수화는 사군자 중 하나이다. 매화 산수화 중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설중매화도(雪中梅花圖)》, 난초 산수화 중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불이선난(不二禪蘭)》, 국화 산수화 중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동리채국도(東籬採菊圖)》, 대나무 산수화 중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의 《니금세죽도(泥金細竹圖)》를 들 수 있다. 사군자를 모두 그린 경우는 주로 병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군자 전체 그림 중에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사군자행서권(四君子行書卷)》과 여성전(呂星田)의 《매난국죽정(梅蘭菊竹幀)》이 유명하다. 여성전의 작품은 추사 김정희가 「여성전이 그린 매란국죽의 족자에 제하다/題呂星田畫梅蘭菊竹幀」라는 시를 남겨서 더욱 유명하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시대 문인들이 사군자를 즐겨 그린 궁극적인 목적은 식물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군자는 식물의 분류학적으로 보면 약간 문제가 있다. 매화는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국화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을 의미하지만, 난초와 대나무는 하나의 식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립표준식물목록에는 난초와 대나무를 검색하면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에는 식물분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식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식물의 온전한 삶이 인간의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동물 학대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식물 학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방송에서도 동물 관련 프로그램은 적지 않은 반면 식물 관련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식물 인식은 식물을 약으로만 보는 본초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식물은 생명체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약을 제공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군자는 인간이 식물을 인격화한 대표적인 사례지만 인식의 한계도 분명하다. 코로나19시대를 맞아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높지만 식물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다. 식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식물을 생명체로 생각하기 위한 첫 단계다. 식물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곧 식물에 대한 철학을 의미한다.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철학은 인간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