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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권영상 작가님] 나도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1.04.01

봄비 그친 뒤, 창문을 연다.
건너편 산이 봄물이 들어 연둣빛으로 우련하다. 아파트 마당은 봄비 끝에 꽃이 지천이다. 남향에 선 목련은 개화가 한창이고, 북향에 선 목련은 꽃부리가 터져나기 직전이다. 핀 지 사나흘 된 살구꽃은 절반이 졌고, 홍매화는 여전히 건재하다.
긴 겨울의 일상은 이 창 너머를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마음 놓고 세상을 나서지 못하는 시절이고 보면 늘 거실 창문 앞에 서서 다가올 봄을 기다렸다. 그때 제일 먼저 내게 봄을 전해준 건 건너편 산의 오리나무 꽃이다. 오리나무에 웬 꽃이냐 할 테지만 눈 녹고 매운바람 슬그머니 물러서면 오리나무는 긴 꼬리 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매단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지만 먼 데서 보면 산은 오리나무 꽃으로 은은히 붉다.
오전 9시, 비 그친 산을 향해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안에 나보다 먼저 꽃잎들이 날아 들어와 있다. 살구나무 분홍 꽃잎이다. 아파트 마당 역시 함박눈 내리듯 흩날린 살구꽃잎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관리실과 보안등 옆에 선 살구나무 세 그루가 봄비와 바람과 어울려 저질러놓은 장난이다. 이들을 불러 따끔하게 야단을 한번 쳐도 좋겠다. 나는 꽃잎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걸어 간신히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간다.
느티나무 오솔길에 봄 풀이 파랗다.
세상으로 뛰쳐나가지 못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봄풀들은 눈 쌓였던 땅을 밀치고 나왔다. 힘없고 두려움 많은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들만 코로나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여왔다.
샘터에 들어서자, 봄비에 벚꽃이 만개했다. 꽃도 꽃도 참 야단스럽다. 살면서 나도 꽃처럼 이토록 야단스레 피어본 적이 있었는지. 남은 생애의 어느 봄날, 꽃처럼 한없이 피어보고 싶다. 비에 젖은 벚꽃은 희고 청초하다. 흰색이 저 혼자 만들어내는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에 감탄한다. 단 이틀, 잠시 안성에 다녀온 사이 서울의 봄이 비에 뻥 터졌다. 벚꽃 어우러진 산길을 입장료도 없이 부푼 마음으로 오른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전혀 다른 군락의 나무들이 나온다. 귀에 좀 낯설겠지만 귀룽나무다. 그걸 산버들이라 하거나 이팝나무라 하는 이들이 있다. 산버들이라 하는 까닭은 아닌 봄에 푸른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 산을 제일 먼저 푸른 봄물로 물들이는 나무라면 당연히 귀룽나무다. 생강나무, 오리나무, 산수유 모두 꽃을 먼저 피우는 데 반해 귀룽나무는 잎을 먼저 피워 세상의 봄을 알린다. 그런 연후에 꽃을 피운다. 귀룽나무를 이팝나무라 오해하는 까닭은 그 꽃숭어리가 희고 이팝나무만치 꽃이 그득하기 때문이다.
귀룽나무숲으로 들어선다. 아랫세상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상이다. 숲은 이들이 연출해내는 연둣빛 향연으로 지금 축제 중이다. 마치 풀빛 낙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환하고 눈이 어려 내가 먼 옛날의 소년으로 돌아간 듯하다.
산 정상엔 그 좋던 생강나무 꽃도 지고, 산수유 꽃도 진다. 아쉽지만 이들이 지지 않으면 벚꽃도 없고, 복사꽃이며 팥배나무 라일락꽃도 없다. 떠나보내야 할 것은 보내야 자두꽃이 피고 배꽃도 핀다. 빈자리는 꽃차례를 기다리는 다음 꽃이 채운다. 꽃이 지지 않으면 피어나는 꽃도 없다.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세상의 이치다. 그런 탓에 시인은 낙화마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라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