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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동강 할미꽃을 보며

[한희철 목사님] 동강 할미꽃을 보며

by 한희철 목사님 2021.04.07

동강 할미꽃을 보러 나선 것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SNS에 올린 동강 할미꽃을 보게 된 날, 마침 야생화를 찍고 싶어 하는 지인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그동안 자신이 찍은 사진과 아내가 쓴 시를 모아 달력을 만드는 분이었습니다. 벌써 서너 해 이어온 일, 올봄엔 야생화를 찍어야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사진으로 본 동강 할미꽃이 떠올랐던 것이었지요.
미룰 것도 없이 영월에 사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무 때나 간다고 꽃이 있는 것은 아닐 터, 꽃이 피는 시기를 물었습니다. 벌써 지지 않았을까 대답한 선배가 잠시 기다려보라 하고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선배는 동강 할미꽃을 잘 알고 있는 이에게 전화를 했고, 마침 요즘이 꽃이 좋을 때라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동강이 흐르는 정선의 귤암리에 꽃이 한창이라는 말을 듣고는 다음날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에서의 거리가 만만치를 않아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요. 강원도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요, 똑똑하게 길을 안내하던 내비게이션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신뢰하는 마음으로 내비게이션을 따른다고 한 것이 너무 일찍 국도로 내려서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언제 한 번 와 본 기억이 없는,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는 굽이굽이 한적한 시골길을 느긋하게 달렸습니다.
골짜기를 끼고 자리 잡은 작고 조용한 동네의 고즈넉함도 보았고, 차를 멈추고 발을 담그고 싶은 개울과 강을 지나가기도 하고, 필시 사람들이 모여 나무와 흙으로 놓았지 싶은 그림 같은 다리도 보았고, 보는 이가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도록 무성하게 핀 꽃들도 보았습니다.
마침내 귤암리, 벌써 길가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쪽에 차를 세우고 다가가자 곳곳에 동강 할미꽃이 눈에 띕니다. 산소 주변 푹푹한 흙에서 피어나는 보통의 할미꽃에 비해 동강 할미꽃은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키 작은 할미꽃이 바위 틈새에서 진한 보랏빛 꽃으로 피어난 모습은 무엇보다도 의연해 보였습니다.
동강 할미꽃은 여기가 내 자리라는 듯 동강 강변에 피어 있었습니다. 나 여기 있다고 자기를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발뒤꿈치를 들지 않았습니다. 작은 키 그대로였습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자랑하거나 푸념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안 보면 어떠냐는 듯이 바위 곳곳 무심함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정선 귤암리는 외진 곳입니다, 그런데도 동강 할미꽃이 동강에 피어나자 사람들이 찾아오고, 꽃을 보며 감탄을 합니다. 우리 삶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흉내를 내며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춰 경쟁하듯이 달리기를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자리, 그곳에서 내 모습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 빛깔로 피어난 키 작은 동강 할미꽃처럼 사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