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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탱자나무의 추억

[김재은 대표님] 탱자나무의 추억

by 김재은 대표님 2021.04.13

매화에 개나리, 벚꽃들이 한바탕 지나간 봄의 자리에 하얀 탱자 꽃이 피었다. 지난 가을 반갑게 만났던 노오란 탱자의 기억 덕분에 아침 산책길에 눈에 밟힌 것이다. 라일락이 그렇듯이 5월에나 피던 아이들이 4월 초에 서둘러 피어난 것을 보니 그들 세상에도 뭔가 일이 있나 보다. 아니 지구촌 사람들이 일찍 불러냈는지도 모른다.
탱자 꽃 하니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가을이 되면 탱자나무 울타리 집의 노란 탱자에 끌려 무시무시한 가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다란 막대 하나로 탱자를 따곤 했다. 자연스럽게 둥글둥글한 탱자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구슬 대신 놀이 도구가 되었다. 풍겨나는 탱자향의 묘한 끌림이 참 좋았음은 물론이다. 지독한 신맛에 용기 있는 아이들만 간혹 맛을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탱자나무를 생각하면 가시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랬을까. 고향 마을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이 제법 있었다. 일을 하다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귀신도 뚫지 못하는 울타리’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탱자나무는 흔한 쓰임의 울타리 말고도 나라를 굳건히 지키는 지킴이 나무였다. 옛날에는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垓字)’라 하여 둘러 가면서 연못을 파고 그도 모자라 성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서산 해미읍성의 탱자성, ‘지성(枳城)’이 거기서 유래되었단다.
그러다 보니 과거 죄인을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 하게 하기도 했고, 겨울날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참새들의 천국이 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매가 하늘에 떠 있어도 이리저리 가시가 뻗어 있어 매가 들어오긴 어렵지만 참새들은 순식간에 들어가 숨어버릴 수 있어서다.
가을날 들판의 걷이가 끝난 직후 우렁이를 잡아다가 삶은 후 깔 때 탱자나무 가시를 사용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렇게 추억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탱자나무인데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하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성어를 통해 누군가는 탱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탱자도 사람도 기후나 풍토,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짐을 배울 수 있으니 고마운 탱자가 아닐 수 없다.
탱자는 향기는 좋지만 같은 부류의 열매와는 달리 먹을 수가 없어서 게으름을 피울 때 '탱자 탱자 논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때론 ‘탱자 탱자’ 노는 게 필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과학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가고 거기에 인간의 욕심이 비례하며 커가다 보니 이런저런 일로 세상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때일수록 양심과 상식, 정의와 공동체 정신 등을 잘 지켜갈 수 있도록 불의와 탐욕을 막아내는 각자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삶을 살아가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끝없는 욕심에 끌려가는 것은 소중한 내 인생을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탱자나무 가시가 나의 욕심 풍선을 터트려주지 않으려나. 도심에서 만난 하얀 탱자나무 꽃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몇 자 끄적거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