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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권하고 싶지 않은 시간

[한희철 목사] 권하고 싶지 않은 시간

by 한희철 목사님 2021.04.28

누구나 살아가며 생각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기계의 성능이 놀랄 만큼 개선된다 하여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단단히 준비를 해도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는 내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열하루 동안 저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격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있던 지인을 만난 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할 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확진 통보를 받은 다음날 앰뷸런스를 타고 생활보호 센터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득 죽음도 이와 같은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고 약속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을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이유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언제 어느 때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와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었습니다.
무증상자들이 격리 생활을 하는 생활보호 센터는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시설은 깨끗했고, 한 방에서 혼자 지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전해지는 식사도 매우 훌륭하여 큰 배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때마다 들었습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어서 다행이라는 자긍심을 느낄 만큼의 배려였습니다.
문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가 없고 창문도 열지 못하는 시간, 답답한 마음을 이기기 위해 하루 7천보 가량을 걸었고, 독서와 기도와 기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게는 수도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청소와 빨래도 매일 이어지는 일과 중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격리 기간을 보내는 동안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것이 있었습니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토요일 새벽예배 참석자 88명과 주일예배 참석자 315명이 모두 검사를 받았고, 모두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이런 홀가분함을 언제 느꼈을까 싶을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밀접 접촉자였던 몇 사람들도 격리의 시간 끝에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을 때, 가벼운 마음은 날아갈 듯싶었고요.
그동안 건강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지내왔지만, 이제는 안전지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증상 감염자가 늘어 언제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에 확진된 것은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의 염려 없이 마쳐 크게 감사하기도 합니다. 큰 불편은 없었다고 해도 누군가 격리의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조심하여 서로 건강한 것이 서로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