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목소리
[권영상 작가님]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목소리
by 권영상 작가님 2021.05.06
고향 친지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축의금만 달랑 보내기가 미안했다. 당일로 되짚어 오는 KTX 표를 미리 예매했다. 돌아오는 시간은 넉넉하게 오후 5시로 잡았다.
예식은 오전 11시였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축하해 주러 왔다. 반가운 고향분들을 만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냥 있을 수 없었다. 열차표를 구실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열차 시간에 대려면 4시간이나 남았다.
예식 장소 인근 호수 주변의 습지와 습지를 따라난 둑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여유다. 소년 시절, 아버지는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두고 혼자 일하셨다. 그때 내가 아버지를 돕는 일은 소먹이는 일이었다. 소는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어렸지만 소가 힘이 있어야 아버지도 덜 힘들다는 걸 알았다. 호숫가에 나와 늦도록 소를 먹여 일몰쯤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바로 이 습지의 둑길이다.
그 일을 떠올리려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던 그 논이 떠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골논이다. 모안리 산과 산 사이에 있는 2,600㎡ 논이다. 큰 논배미와 그 위의 작은 논배미 둘로 이루어진 다락논이다. 작은 논배미는 대체로 수렁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그 논을 가시다가 소와 함께 수렁에 빠지신 적이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시다가 그만 빠지셨다. 아버지도 소도 허리춤까지 쑤욱 빠져들었다. 어린 나는 허둥지둥했다. 아버지는 내게 논둑에 준비해 둔 가마니를 던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던진 가마니를 의지 삼아 수렁을 나오셨다. 그러나 소는 빠져나오려 자꾸 몸을 움직였으나 점점 빠져들었다. 끝내 소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놀라지 마라! 어떻든 너를 구해주마.”
아버지는 나직한 말로 소를 진정시키셨다.
아버지는 이윽고 소가 보는 앞에서 다시 수렁에 들어가셨다. 당신도 이렇게 수렁에 빠지며 너를 구하려 한다는 걸 보여주시는 듯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짚고 나오신 가마니를 소 발 앞에 욱여넣으셨다.
“이걸 밟고 나오려무나.”
아버지 말대로 소는 어찌어찌 가마니를 그루터기로 삼아 간신히 수렁에서 나왔다.
“장하구나! 그럴 줄 알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닦으시던 맥포수건으로 소 잔등에 흠뻑 배어 나온 땀을 닦아주셨다.
나는 그때 그 생각을 하며 골논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을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 안 계시는 이 세상처럼 그 길도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헤집어 내어 마침내 그 골논에 당도했다.
아,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뵙듯 논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수렁에 빠진 소의 잔등을 닦아주시던 그 옛날의 아버지가 어디선가 나를 보고 계실 것만 같았다. 나는 일어나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애쓰시던 아버지의 논바닥을 꾹꾹 밟아나갔다. 그런데 보니 논은 이미 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드릅나무를 심어놓은 밭이 되어 있었다. 논농사 지을 사람이 없다며 논을 메워 아는 이에게 빌려준다던 큰 조카의 말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벌써 4시다. 나는 아버지의 논에서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조심해 가거라!’ 그러는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축의금만 달랑 보내기가 미안했다. 당일로 되짚어 오는 KTX 표를 미리 예매했다. 돌아오는 시간은 넉넉하게 오후 5시로 잡았다.
예식은 오전 11시였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축하해 주러 왔다. 반가운 고향분들을 만났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냥 있을 수 없었다. 열차표를 구실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열차 시간에 대려면 4시간이나 남았다.
예식 장소 인근 호수 주변의 습지와 습지를 따라난 둑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여유다. 소년 시절, 아버지는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두고 혼자 일하셨다. 그때 내가 아버지를 돕는 일은 소먹이는 일이었다. 소는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어렸지만 소가 힘이 있어야 아버지도 덜 힘들다는 걸 알았다. 호숫가에 나와 늦도록 소를 먹여 일몰쯤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바로 이 습지의 둑길이다.
그 일을 떠올리려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던 그 논이 떠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골논이다. 모안리 산과 산 사이에 있는 2,600㎡ 논이다. 큰 논배미와 그 위의 작은 논배미 둘로 이루어진 다락논이다. 작은 논배미는 대체로 수렁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그 논을 가시다가 소와 함께 수렁에 빠지신 적이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시다가 그만 빠지셨다. 아버지도 소도 허리춤까지 쑤욱 빠져들었다. 어린 나는 허둥지둥했다. 아버지는 내게 논둑에 준비해 둔 가마니를 던지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던진 가마니를 의지 삼아 수렁을 나오셨다. 그러나 소는 빠져나오려 자꾸 몸을 움직였으나 점점 빠져들었다. 끝내 소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놀라지 마라! 어떻든 너를 구해주마.”
아버지는 나직한 말로 소를 진정시키셨다.
아버지는 이윽고 소가 보는 앞에서 다시 수렁에 들어가셨다. 당신도 이렇게 수렁에 빠지며 너를 구하려 한다는 걸 보여주시는 듯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짚고 나오신 가마니를 소 발 앞에 욱여넣으셨다.
“이걸 밟고 나오려무나.”
아버지 말대로 소는 어찌어찌 가마니를 그루터기로 삼아 간신히 수렁에서 나왔다.
“장하구나! 그럴 줄 알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닦으시던 맥포수건으로 소 잔등에 흠뻑 배어 나온 땀을 닦아주셨다.
나는 그때 그 생각을 하며 골논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을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 안 계시는 이 세상처럼 그 길도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헤집어 내어 마침내 그 골논에 당도했다.
아,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뵙듯 논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수렁에 빠진 소의 잔등을 닦아주시던 그 옛날의 아버지가 어디선가 나를 보고 계실 것만 같았다. 나는 일어나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애쓰시던 아버지의 논바닥을 꾹꾹 밟아나갔다. 그런데 보니 논은 이미 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드릅나무를 심어놓은 밭이 되어 있었다. 논농사 지을 사람이 없다며 논을 메워 아는 이에게 빌려준다던 큰 조카의 말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벌써 4시다. 나는 아버지의 논에서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조심해 가거라!’ 그러는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