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청보리 물결은 희망
[이규섭 시인님] 청보리 물결은 희망
by 이규섭 시인님 2021.05.07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청보리가 초록 물결로 일렁이는 오월이면 국민 애창가곡 ‘보리밭’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윤용하가 작곡하고 시인 겸 아동문학가 박화목이 노랫말을 지었다. 작사자 박화목은 종군기자, 작곡가 윤용하는 해군 음악대원으로 종군 작곡가로 활동했다.
같은 이북 출신인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1951년 부산으로 피난 갔다. 윤 작곡가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 줄 서정 가곡 한편을 만들자고 제의했고 박 시인이 동의하여 ‘보리밭이’ 탄생했다. 서정성 짙은 가사에 멜로디는 부드럽다.
40년 넘게 보리밭을 소재로 한국미를 채색해온 이숙자 화백을 만나려 일산에 위치한 그의 아틀리에에 들렀다. 대형 화판의 ‘청보리밭’과 바람에 일렁이는 ‘황맥’ 그림을 보니 ‘보리밭 사잇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장미 모자를 쓴 여인’ 그림과 닮은 이 화백이 보랏빛 머리 염색에 보랏빛 무늬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사진 틀 속에서 걸어 나온 듯 반긴다. 올해 여든,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는 ‘보리밭 작가’로 불린다. 1970년대부터 보리밭을 화폭에 담았다. 보리밭 그림으로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국전 추천 작가가 됐다. 그녀는 보리밭을 그렸고, 보리밭은 그녀를 키웠다. 2007년 대학 정년퇴임 후 ‘후세에 남길 만한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왜 보리밭 그림에 천착했는지 궁금했다.
“보리밭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가 담겨 있어요.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는 민중에게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보리의 생명력은 굳세다. 눈 속에 싹튼 보리 싹은 밟을수록 튼튼해진다. 오월의 물결치는 보리이랑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희망이고 누렇게 익은 황맥의 숨결은 결실의 기쁨이다. 그가 보리밭을 좋아하는 이유다.
‘황맥’ 그림 앞으로 갔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란다. 오돌토돌 보리 이삭의 까실까실함이 손끝에 전해온다. 돌가루를 아교에 섞어 화폭에 바르는 암채(巖彩) 기법으로 보리알과 보리 수염을 입체적으로 채색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눈에 띄게 굵게 그린 보리 수염은 세필로 반을 쪼개고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극세필로 비단결같이 섬세한 수염을 그리기도 하고 힘차고 굵게 다이내믹하게 표현한다. 보리가 화폭에서 톡톡 불거져 나와 입체적이다. 그는 “화판에다 손바닥을 문지르며 보리 수염을 그려 손바닥이 닳아서 피가 맺히기도 했다”고 말한다. 채색화 부문에선 단연 발군의 작가로 꼽힌다.
보리밭 그림과 함께 주목받는 작품세계는 보리밭 누드화. 예로부터 농촌의 초여름 보리밭은 남녀가 은밀한 사랑을 나누던 밀회의 장소였다. 훈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보리이랑은 서정과 욕정을 불러일으킨 빛바랜 시대의 풍속도다. 청청한 보리밭 속의 벌거벗은 여인은 원초적 아름다움이자 한국적 에로티시즘이다. 그녀의 남편은 퇴직 언론인. 팔순에 접어든 부부는 보리밭에 둥지를 튼 종달새처럼 산다.
청보리가 초록 물결로 일렁이는 오월이면 국민 애창가곡 ‘보리밭’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윤용하가 작곡하고 시인 겸 아동문학가 박화목이 노랫말을 지었다. 작사자 박화목은 종군기자, 작곡가 윤용하는 해군 음악대원으로 종군 작곡가로 활동했다.
같은 이북 출신인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1951년 부산으로 피난 갔다. 윤 작곡가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 줄 서정 가곡 한편을 만들자고 제의했고 박 시인이 동의하여 ‘보리밭이’ 탄생했다. 서정성 짙은 가사에 멜로디는 부드럽다.
40년 넘게 보리밭을 소재로 한국미를 채색해온 이숙자 화백을 만나려 일산에 위치한 그의 아틀리에에 들렀다. 대형 화판의 ‘청보리밭’과 바람에 일렁이는 ‘황맥’ 그림을 보니 ‘보리밭 사잇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장미 모자를 쓴 여인’ 그림과 닮은 이 화백이 보랏빛 머리 염색에 보랏빛 무늬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사진 틀 속에서 걸어 나온 듯 반긴다. 올해 여든,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는 ‘보리밭 작가’로 불린다. 1970년대부터 보리밭을 화폭에 담았다. 보리밭 그림으로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국전 추천 작가가 됐다. 그녀는 보리밭을 그렸고, 보리밭은 그녀를 키웠다. 2007년 대학 정년퇴임 후 ‘후세에 남길 만한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왜 보리밭 그림에 천착했는지 궁금했다.
“보리밭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가 담겨 있어요.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는 민중에게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보리의 생명력은 굳세다. 눈 속에 싹튼 보리 싹은 밟을수록 튼튼해진다. 오월의 물결치는 보리이랑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희망이고 누렇게 익은 황맥의 숨결은 결실의 기쁨이다. 그가 보리밭을 좋아하는 이유다.
‘황맥’ 그림 앞으로 갔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란다. 오돌토돌 보리 이삭의 까실까실함이 손끝에 전해온다. 돌가루를 아교에 섞어 화폭에 바르는 암채(巖彩) 기법으로 보리알과 보리 수염을 입체적으로 채색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눈에 띄게 굵게 그린 보리 수염은 세필로 반을 쪼개고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극세필로 비단결같이 섬세한 수염을 그리기도 하고 힘차고 굵게 다이내믹하게 표현한다. 보리가 화폭에서 톡톡 불거져 나와 입체적이다. 그는 “화판에다 손바닥을 문지르며 보리 수염을 그려 손바닥이 닳아서 피가 맺히기도 했다”고 말한다. 채색화 부문에선 단연 발군의 작가로 꼽힌다.
보리밭 그림과 함께 주목받는 작품세계는 보리밭 누드화. 예로부터 농촌의 초여름 보리밭은 남녀가 은밀한 사랑을 나누던 밀회의 장소였다. 훈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보리이랑은 서정과 욕정을 불러일으킨 빛바랜 시대의 풍속도다. 청청한 보리밭 속의 벌거벗은 여인은 원초적 아름다움이자 한국적 에로티시즘이다. 그녀의 남편은 퇴직 언론인. 팔순에 접어든 부부는 보리밭에 둥지를 튼 종달새처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