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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진정한 승자

[한희철 목사님] 진정한 승자

by 한희철 목사님 2021.06.09

우연히 접하게 된 영상을 보았습니다. 짧은 영상이었고 영상에 담긴 것은 화면뿐이어서 나머지는 짐작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상 속 내용을 정확하게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몇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가 양쪽에 서서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하고 있고, 저 앞에 결승 테이프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뭔가 경기가 열리고 있는 중이고 바로 그 지점이 결승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두 선수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선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다리가 휘청거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았습니다. 결승점 앞에서 그렇게 지쳐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 하고 있는 경기가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혹은 마라톤이겠다 싶었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결승점, 운동선수로서는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의 고된 훈련과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고 이어온 질주, 그 모든 것의 보상을 받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충분히 기력이 남아 있어 보이는 선수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지친 선수를 손쉽게 앞질러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더 이상 걸음을 내딛기 힘든 선수 곁으로 가서 그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일으킨 뒤 함께 한 걸음씩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부축을 하는데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선수는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했습니다. 또다시 주저앉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그를 부축한 선수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뒤에서 누가 쫓아올까 무리하게 서두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두 선수는 둘이서 하나로 엉겨 함께 결승점을 지났습니다.
결승점을 통과하자마자 지쳐 있던 선수는 바닥에 쓰러졌고, 미리 대기했던 휠체어에 실려 급히 옮겨졌습니다. 그를 부축하여 함께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는 그에게 박수로 축하를 보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목격한 관중들은 큰 감동을 받아 더욱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요.
운동선수가 경기 중에 지친 것은 그동안 체력관리를 잘못했거나 욕심을 앞세워 무리하게 달린 결과라고 생각하며 얼마든지 지친 선수를 무시하고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여 우승을 확정한 뒤 쓰러진 선수를 부축하러 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에는 덜 부담스러웠겠지요.
쓰러진 선수와 함께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 내게 진정한 승자는 바로 그 선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