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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한 발짝밖에 되지 않는 죽음

[한희철 목사님] 한 발짝밖에 되지 않는 죽음

by 한희철 목사님 2021.06.16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은 괜한 허사가 아니었습니다. 사고 영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도로 위로 엄청난 크기의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그러자 폭격을 맞은 듯 사방을 뒤덮는 먼지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은 마침 그곳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덮쳤고, 버스에 탔던 승객들이 피할 새도 없이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사고가 난 시간이 오후 4시 20분경,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평온한 저녁을 꿈꾸던 시간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 모두 9명, 전해지는 소식들마다 마음 아프고 아리지 않은 소식들이 없습니다. 갑자기 당한 희생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큰아들 생일을 맞아 장을 보고 돌아가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엄마가 차려줄 생일상을 기대하던 아들은 느닷없이 닥친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일까요.
“아빠, 버스 탔어요. 집에서 만나. 사랑해.”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사고 버스를 타며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습니다. 그는 늦둥이로 태어난 2대 독자로,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가 딸처럼 살가웠다고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었겠지요. 돌아올 아들 대신 비보를 들어야 했을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버스를 탔으면서도 딸과 아버지의 운명이 갈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빠는 앞쪽에 앉았고 막내딸은 뒤쪽에 앉았던 것인데, 희생자의 대부분은 버스 뒤쪽에 앉은 이들이었습니다. 딸은 투병 중인 어머니 면회를 가던 길, 같이 있자고 할걸, 자리를 바꿔 앉을걸, 아버지의 마음 아픈 후회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마음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생과 사가 아슬아슬하게 갈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도로 위를 지나가던 또 한 대의 버스가 있었습니다. 한 회사의 통근버스였는데,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바로 직전 그 앞을 지나갔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사고를 당한 버스 바로 앞에서 급히 멈춰 선 차들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불과 1-2초 사이, 생과 사의 경계는 그 짧은 순간에 영원처럼 갈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다윗이 털어놓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은 사울 왕의 아들이자 자신의 친구인 요나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죽음 사이는 한 발짝밖에 되지 않네.”
우리 삶은 깎아지를 듯한 벼랑 끝을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발짝 밖에 되지 않는 삶과 죽음 사이를 말이지요. 헤아릴 길 없는 슬픔을 당한 분들에게 하늘의 가없는 위로가 임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