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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플로깅과 줍깅

[한희철 목사님] 플로깅과 줍깅

by 한희철 목사님 2021.06.24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전혀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버려진 나무토막이 여느 사람에게는 땔감에 지나지 않아도, 명장을 만나면 악기가 됩니다. 커다란 돌덩이가 보통 사람에게는 하나의 바위일 뿐이어도, 뛰어난 조각가는 돌 안에 갇힌 작품을 끌어냅니다. 몰랐던 사람과 사람이 만나 희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중에는 언어도 있습니다. 물론 그 뜻을 가늠하기 힘든 낯선 말들도 적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신선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내기도 합니다.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는데 예전에 물을 길을 때면 펌프질을 했습니다. ‘펌프’라는 외국말과 ‘질’이라는 우리말이 어색함 없이 어울리며 마치 우리말처럼 자리를 잡은 대표적인 예라 여겨집니다.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플로깅’입니다.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과 ‘느린 속도로 달리기’라는 뜻의 영어 ‘jogging’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말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새로운 개념의 운동입니다.
플로깅은 2016년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였던 에리크 알스트룀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스웨덴 중부 지역에서 수도 스톡홀름으로 이사한 후 거리와 공원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에 충격을 받은 그는 스톡홀름 시내 거리에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던 그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공감을 한 이들이 그 일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그 일은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퍼져갔습니다. 마침내 스페인의 알리칸테 시에서 이 활동을 전국적인 환경보호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단체인 ‘플로깅 혁명’이 계기가 되어 ‘플로깅’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플로깅이 처음 시작됐을 때 스웨덴 주민들은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새로운 놀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플로깅은 커다란 봉투를 들고 거리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최대한 많이 주워 담으면서 목적지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플로깅을 마친 뒤에는 SNS에 인증을 남겨 다른 이의 동참을 권하기도 합니다. 쓰레기를 주울 때 자연스럽게 허리와 다리를 구부리게 되어 운동 효과가 일반 조깅보다 크고, 거기에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는 장점까지 있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누가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요, 최근 ‘줍깅’이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줍깅’이라는 말을 대하는 순간 그 기발함에 감탄부터 나왔습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줍깅’이라는 말이 ‘줍다’라는 우리말과 ‘조깅’이 합해진 말이라는 것이 충분히 짐작되었습니다. ‘줍깅’이라는 말은 ‘플로깅’이라는 말보다도 훨씬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참 좋은 말을 찾아냈으니, 이 좋은 일에 많은 이들이 즐거이 동참하여 우리의 마음까지 깨끗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