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 아름다운사회

[강판권 교수님] 버찌를 잊은 그대

[강판권 교수님] 버찌를 잊은 그대

by 강판권 교수님 2021.06.28

여름은 장미과 나무들이 열매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삶의 터전 곳곳에서 익어가는 나무의 열매를 만날 수 있다.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장미과 나무에는 매실나무, 살구나무, 앵도나무, 왕벚나무, 사과나무, 자두나무, 복사나무, 배나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나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는 점이다.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는 것은 그만큼 열매를 일찍 맺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장미과 나무들의 열매가 한창 익어가는 모습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계절이다. 내 주변에는 장미과 나무들의 열매를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왕벚나무를 비롯한 벚나무의 열매인 버찌를 판매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서양 버찌인 체리를 판매하는 장면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버찌는 과일로 먹지 않다 보니 가로수 주변에 떨어진 버찌가 셀 수없이 많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가로수 주변을 걷던 사람들은 발에 밟힌 버찌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태도는 봄철 화려한 왕벚나무 꽃에 환장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이 같은 상반된 태도는 벚꽃이 진 뒤로 왕벚나무의 존재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왕벚나무에 열린 버찌가 익으면 거의 흑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고개를 들어 익은 버찌를 바라보면 감동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
왕벚나무의 꽃은 화려하지만, 화려한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화려한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버찌는 화려한 꽃에 비하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다. 그래서 사람들은 버찌를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버찌는 화려한 꽃을 만드는 종자다. 종자 없이는 화려한 꽃은 탄생할 수 없다. 인간이 종자를 잊어버리면 정체성마저 포기하는 것과 같다. 종자는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버찌를 잊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종자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종자를 많이 사용할수록 행복지수는 올라간다. 버찌를 잊고 살면 왕벚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일부만 보는 것과 같다. 만약 버찌를 잊지 않고 본다면 왕벚나무의 다른 모습까지 보는 것이다. 나무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은 곧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본다는 뜻이다.
버찌를 관찰하면 한층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무의 열매는 꽃의 모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버찌를 벚꽃 피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관찰하면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만약 버찌를 보면서 벚꽃 모습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다면 벚꽃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평소에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소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로 바라본다. 생명체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지만, 지혜가 없으면 평생 허상만 쫓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버찌의 가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걷다가 떨어진 버찌가 발에 밟혀도 짜증은커녕 잠시나마 가던 길을 멈추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무에게 감사할 것이다. 살면서 자신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존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