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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기계치의 불편한 일주일

[한희철 목사님] 기계치의 불편한 일주일

by 한희철 목사님 2021.06.30

2년여 사용해오던 핸드폰을 최근에 바꿨습니다. 사용하는 핸드폰의 용도가 단조로워 몇 가지 기능을 사용할 뿐이었는데, 그나마 즐겨 사용하던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기계를 바꾸는 선택을 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가면 기계에 문제가 생기게 하는 것이 기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한 번 구입한 기계가 고장 나지 않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릅니다. 고장이 나지 않으면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려 할 터, 새로운 기계를 팔아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쉽게 고장이 나게 만들면 신뢰를 잃어버릴 테니, 그 절묘하고 적절한 시점을 찾아내는 일이 고도의 기술 아닐까 싶습니다.
핸드폰을 바꾸고 나면 한동안은 혼란을 겪습니다. 기능이 조금만 바뀌어도 길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자판을 잘못 누르면 뭔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예전에 사용하던 기능을 쓸 수 있지만 따로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메모를 해둔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글자를 읽어나가듯 척척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나는 다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뭔가 종이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핸드폰을 바꾸기도 했거니와 지난 며칠 동안 일상이 더욱 혼란스러웠던 것은 때마침 컴퓨터의 인터넷 접속마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생긴 문제인지 연결이 되었다가 끊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느 샌지 책상에 앉으면 인터넷을 통해서 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소엔 그런 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막상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고 나니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제법이었습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연의 줄이 갑자기 대추나무에 걸려버린 것 같았습니다. 도무지 풀 길 없는 수학 문제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던 와이파이마저 잡히지를 않으니 답답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지요.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 겹쳐 발생하자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는 일, 원고를 쓰는 일, 커피를 끓이거나 차를 마시는 일, 음악을 듣는 일,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일 등은 주어진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천둥 번개가 요란한 밤 갑자기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켠 것처럼 주어진 상황은 생소하고 불편했지만 오히려 그런 일을 통해 기계의 역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타고난 기계치로서는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기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본래적인 일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했으니, 아주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