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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단순한 세월

[한희철 목사님] 단순한 세월

by 한희철 목사님 2021.07.07

‘깐깐오월’, ‘미끈유월’, ‘어정칠월’, ‘동동팔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음력으로 오월은 양력으로 유월쯤이 되는데, 낮이 길고 힘든 일이 많아 깐깐하게 지나가는 달이라고 ‘깐깐오월’이라 했습니다. 망종이 든 유월은 보리 거두랴 모심으랴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일에 쫓겨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지나가기에 ‘미끈유월’입니다. 바쁜 유월이 지나가면 별일 없이 어정거리다가 지나가게 되는 ‘어정칠월’을 맞습니다. 가을걷이에 바빠지기 시작하는 음력 팔월은 워낙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다고 ‘동동팔월’ 또는 건들바람처럼 덧없이 지나간다고 ‘건들팔월’이라고 부릅니다. 한 달 한 달 그 달이 갖는 의미를 새긴 표현이 재미있고 그윽하게 다가옵니다.
한 번 무더위가 시작되면 언제 꺾일까 싶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금방 서너 달이 지나가는 셈입니다. 깐깐, 미끈, 어정, 동동, 그렇게 징검다리처럼 놓인 시간의 돌 몇 개를 건너면 어느새 가을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의 단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이 그것입니다. 겨울 한복판에서 맞는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입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것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동지가 지나면 노루 꼬리 만큼씩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집니다. 밝음과 어둠이 균형을 이루게 되지요. 우리는 그날을 ‘춘분’(春分)이라고 부릅니다.
춘분은 또 하나의 시간의 분기점이어서, 춘분을 지나면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밤의 길이는 갈수록 짧아지기 시작하지요. 마침내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날이 ‘하지’(夏至)입니다.
하지가 지나고 나면 빛의 흐름이 조금씩 바뀝니다. 여전히 낮이 길지만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씩 낮이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균형을 맞추듯 다시 한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이 ‘추분’(秋分)입니다.
추분을 지나면 해가 서둘러 서산으로 기울 듯 낮이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가을걷이와 겨울준비를 하는 손길이 더욱 분주해집니다. 날이 쌀쌀해지기도 하거니와 갈수록 해가 짧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맞이하는 날이 ‘동지’입니다.
동지와 춘분과 하지와 추분, 그것은 마치 수레바퀴가 한 바퀴 구르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구르면 한 해가 가는 것이지요. 사람이 백 년을 산다고 하면 수레바퀴가 백 번을 구르는 셈, 백 번을 구른 수레가 얼마나 멀리 갈까 생각하면 사람의 삶이 더없이 단순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옹다옹 다투며 살 일이 아니고, 아등바등 거칠게 살 일도 아닙니다. 괜한 욕심에 세월을 허송할 일도 아니고, 헛된 일에 마음을 빼앗길 일도 아닙니다. 단순한 세월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할 것을 마음 다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