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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장마와 상두(桑土) 정신

[강판권 교수님] 장마와 상두(桑土) 정신

by 강판권 교수님 2021.07.12

장마철이다. 중국에서는 장마를 매우(梅雨)라 부른다. 장마철에 매실나무의 열매가 익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매실나무 열매의 익은 모습을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열매가 익기 전에 따서 매실 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살구나무 열매는 대부분 청으로 만들지 않고 익은 것을 먹는다. 장마는 우리나라 기후의 특성상 피할 수 없지만 그 피해는 적지 않다. 그래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의 고전 『시경·빈풍·치효』에는 “장맛비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의 껍질을 벗겨 둥지 창문 얽어매면 저 아래 인간들이 감히 나를 깔보겠나”라는 구절이 있다. 새들은 장마가 오기 전에 뽕나무의 껍질로 둥지를 튼튼하게 만든다. 뽕나무 뿌리의 껍질을 ‘상두(桑土)’라 부른다. ‘土’는 뿌리를 의미할 때는 ‘두’로 읽는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방지한다는 ‘상두주무(桑土綢繆)’가 여기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이덕리(李德履, 1725-1797)의 『상두지(桑土志)』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상두지』는 변경에 둔전을 설치하고 성(城)의 제도를 정비하여 외적의 침입을 예방하는 각종 대비책을 서술한 책이다. 이덕리는 이러한 대비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동다기(東茶記)』를 저술했다.
『동다기』는 우리나라의 차를 전매해서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우리나라 유일의 차 무역 관련 작품이다. 이덕리의 주장은 관철되지 않았지만, 그는 귀양지에서도 국가의 장래를 걱정했다.
공자는 『시경·빈풍·치효』의 시를 지은 자에 대해 도(道)를 아는 사람이라 평가했다. 새들의 유비무환 정신은 국가 경영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마는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지 못한 곳은 언제나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특히 해마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장마철 재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한순간 방심하면 재해는 언제든지 일어난다. 특히 기후온난화는 그간 인간이 축적한 정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의 새들이 둥지를 수리할 때 뽕나무 뿌리를 사용하는 것은 그 지역에 뽕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시가 등장하는 지역은 주나라의 수도였던 섬서성이다. 섬서성에는 뽕나무가 아주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중국 청대 양선(1687-1758)의 『빈풍광의(豳風廣義)』는 바로 섬서성의 뽕나무와 누에 기르는 법에 대한 농서이다.
새들이 뽕나무의 뿌리를 이용한 또 다른 이유는 섬유질이 많아서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뽕나무 뿌리는 종이를 만드는 원료였다. 종이를 만드는 데 아주 긴요한 닥나무에 섬유질이 많은 것도 닥나무가 뽕나뭇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마철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장 점검 없이 책상에서 정책을 실시하면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현장을 찾지 않는 책임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