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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사람과 친근한 여름 꽃들

[한희철 목사님] 사람과 친근한 여름 꽃들

by 한희철 목사님 2021.07.16

누가 돌보지도 않는데 뜰 안에 봉숭아꽃이 핀다. 짓궂게 비 오는 여름날, 그 많은 비를 다 맞으며 피는 봉숭아꽃을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다소곳하고 좀은 수줍어하는 꽃이다. 내색하지 않는, 보아야 보이는 꽃이다. 무성한 잎 아래 보일 듯 말 듯 꽃을 숨기고 있다. 궂은 비에 꽃이 젖을까 봐 잎으로 감싸는 모성애가 고요히 느껴진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씨앗 몇 개를 얻어다 심었던 것이 저 홀로 어찌어찌 가까운 자리를 소리 없이 옮겨 다니며 핀다.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꽃이다. 그렇게 어느 한켠에 부끄러이 머물다가, 어느 때에 잠깐 사람의 눈길 안에 들어왔다가 고대 잊혀지고 만다. 우리 곁에 다가와도 선뜻 보지 못하고, 떠나갔다 해도 그가 있던 자리에 표가 나지 않는 꽃이다. 봉숭아가 고즈넉이 비를 맞는다.
누가 돌보지 않는데도 저 홀로 나고 피는 꽃 중에 분꽃이 있다. 한번 심어놓으면 스스로 꽃씨를 떨어뜨려 이듬해면 누가 불러내지도 않는데 제 섰던 언저리에 돋아나 지난해 피우던 그 꽃을 마저 피운다.
분꽃도 봉숭아꽃 못지않게 수줍어하는 꽃이다. 꽃 피는 시간대만 봐도 알 수 있다. 분꽃은 대개 해 질 무렵에 개화하여 밤 동안 피어 있다가 해 뜰 무렵을 전후해 진다. 사람의 눈을 피해 밤 시간대에 핀다. 우리가 분꽃을 보는 때는 대개 아침이거나 저녁 무렵이다. 그러니 자연 분꽃의 단골은 벌과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거나 박각시 정도다.
분꽃은 직장에서 돌아오는 고단한 이들의 밤길을 맞이하는 꽃이다. 예전, 직장 근처엔 골목길에 커다란 분꽃 화분을 내놓고 키우는 길갓집들이 더러 있었다. 달 뜨는 밤에 그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만나는 분꽃은 예뻐서 눈이 어린다. 수십수백 송이의 자잘한 분꽃 앞에 이르면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야아, 이거 정말 눈이 호강하네!”
빨갛거나 노랗거나, 아니면 두 색상이 반반씩 피어 어우러진 분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두운 저녁 길갓집 낮은 담장 안엔 딸깍 노란 불이 켜지고,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나고, 아빠, 아빠는 밥이 좋아? 사탕이 좋아? 그러는 아이 말소리가 분꽃에서 들려오는 밤.
그런 소리를 들으며 분꽃에 코를 댄다.
분꽃 향기가 맑다. 한 번으로 그치기가 아깝다. 다시 코로 꽃을 더듬는다.
“아빠, 우리 고구마 먹을까?”
그러는 아이의 말소리가 분꽃 향기처럼 늦은 퇴근길을 정답게 한다.
7월의 뜰에 한창 피는 꽃이 있다. 접시꽃이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친근하게 만나는 게 접시꽃이다. 주로 남향인 담장 가에 피어 있거나 고추밭 가장자리, 아니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 옆에 서 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왠지 가까이 다가가 저어, 하고 말을 붙여보고 싶다.
누구의 주머니에 따라 들어왔는지 우리 집 뜰 안에도 접시꽃이 핀다. 처음엔 한 그루였는데 7,8년 사이 모둠그루가 됐다. 물을 주어 돌보기보다 그냥 제가 크는 대로 놓아두면 여름 장맛비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키가 커 빈집을 맡겨놓고 멀리 다녀와도 든든하다.
봉숭아나 분꽃이나 다들 민가 근처에서 사람과 함께 산다. 크게 돌보아 주지 않아도 저 홀로 살고 저 홀로 꽃 핀다. 그렇기는 해도 사람을 떠나면, 그러니까 민가를 떠나서는 못 사는 꽃들이다. 서로 일정한 거리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산다. 그게 그들이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