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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피카소의 반전 그림

[이규섭 시인님] 피카소의 반전 그림

by 이규섭 시인님 2021.07.30

유럽여행을 흔히 대성당과 미술관 순례라고도 한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도 마찬가지다. 알부데나 대성당을 둘러보고 스페인광장에서 돈키호테를 만난 뒤 프라도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국립미술관을 들리는 일정이다.
프라도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스페인 왕실이 수집한 6000여 점의 미술품이 소장된 곳이다. 유명한 작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데다 인파로 붐벼 여행자가 여유 있게 작품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순수한 심미적 감각을 즐기는 시간은 오렌지 향기를 맡는 순간보다 짧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관장을 지낸 미술사 전문 교수 케네스 클라크의 말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아!” 하고 감탄하는 시간은 고작 2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화가들의 생애와 미술사의 맥락을 이해하며 감상한다는 건 한정된 시간에 무리다. 한정식의 밑반찬이 다채롭고 맛깔나도 평소 먹어 본 반찬에 수저가 먼저 가듯 꼭 보고 싶은 작품을 메모하여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를 비롯하여 16∼17세기 스페인 회화의 황금기에 활약했던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수수께끼를 풀 듯 찬찬히 살펴야 한다.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은 미로, 달리, 타피에스 등 20세기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과 만나는 감동을 누린다. 소장품 중 유명한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유채화. 349㎝×776.6㎝)다. 별도의 공간에 전시되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1937년 나치 독일군이 게르니카를 무차별 융단폭격하자 격분하여 그린 대형 회화로 폭력적 역사를 고발한다.
‘게르니카’ ‘시체구덩이’와 함께 피카소의 반전예술 3대 걸작으로 꼽히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원화가 한국에 나들이를 왔다. 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 기념 ‘피카소, 신화 속으로’ 특별 전시회가 8월 29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오리지널 110여 점이 선보여 피카소 예술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투구를 쓴 무장한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대고, 그 앞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떨고 있는 구도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았다. 작품의 모티브는 6·25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 지역 주민들 간에 발생한 참상이다.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기에 앞서 신천의 공산주의자들이 우익 인사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한 우익 진영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좌·우익의 살육전이 벌어졌고, 약 3만 5천여 명이 희생됐다.
북한은 사건 직후부터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신천지 학살’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국내외에 알렸다. 프랑스 공산당은 당원인 피카소에게 반민 선전 작품을 의뢰했고 1951년 제작됐다. 이 그림은 북한 선전·선동의 산물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피카소는 작품 설명에서 이런 배경을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