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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갯벌, 세계자연유산이 되다

[이규섭 시인님] 갯벌, 세계자연유산이 되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1.08.09

남도 땅 순천을 갈 때마다 떠오르는 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다. ‘진군하는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다’는 소설 속의 무대가 김승옥이 유년과 소년기를 보낸 대대포구와 갯벌이다. 대대포구는 순천시를 관통하는 동천과 남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이사천이 합류하여 바다로 흐르는 길목이다.
대대포구 들머리에 들어서면 갈대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갈대꽃이 피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솜털마다 햇빛 머금은 하얀 손으로 유혹의 손짓을 한다. 1990년대 초 상류에 상사댐이 축조되어 물의 유입이 줄면서 퇴적물이 쌓이며 갈대는 더 무성해졌다. 국내에서 가장 넓고 보전이 잘 된 갈대군락이다.
갈대군락은 적조를 막는 정화 기능이 뛰어나 순천만의 천연 하수종말처리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대동 방죽에서 화포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갯벌에 붉디붉은 칠면초가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놓는다. 1년에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칠면초를 이곳에서는 ‘기진개’라고 부른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칠면초와 사초, 물억새 등이 어우러져 국제적 멸종 위기종인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민물도요 등이 머물다가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순천만은 세계 5대 갯벌에 속한다. 뻘 층이 깊고, 분해성 미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여 유기영양분이 충분하다. 한국에서 가장 질이 좋은 습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좁쌀무늬고동과 미기록 고동 등 희귀 연체동물 4종과 멸종 위기종인 두드럭조개가 확인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순천만 갯벌은 순천시 벌량면ㆍ해룡면과 도사동 일대의 28㎢와 보성군 벌교읍 해안가 갯벌 7.5㎢를 아우른다.
순천만 서쪽 끝 와온포구로 해가 떨어지면 홍차 빛 노을이 갈대와 칠면초와 바다는 물론 탐사객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인다. 순천만은 2003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3년 뒤 순천만 갯벌과 보성 벌교 갯벌이 국제적 습지 관련 기구인 람사(RAMSAR) 협약에 등록돼 보존 가치를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지난 7월엔 순천ㆍ보성의 갯벌을 비롯하여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2007년 등재된 제주도 화산 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한국의 세계자연유산으로는 두 번째다. 한국의 갯벌은 멸종 위기종인 27종의 철새를 비롯하여 2000종 이상의 생물이 서식하는 곳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22개국에 걸친 세계 철새 이동 경로상의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한다. 갯벌이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보전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관리비를 지원받게 되고 관광자원 활용에도 유리하다.
갯벌은 생물 다양성의 보물창고이자 식량창고 구실을 한다. 갯벌에 사는 생물 가운데는 신약물질 개발에 이용되는 것도 있다. 갯벌은 해일이 밀려오면 완충지대로 방파제 역할을 하며 자연재해의 방패막이가 돼준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에어컨이자 가습기 역할을 하며 기후조절에도 큰 몫을 한다. 자연유산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여 후대에 값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자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