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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다시 도토리거위벌레 앞에서

[한희철 목사님] 다시 도토리거위벌레 앞에서

by 한희철 목사님 2021.08.11

숲은 고마운 친구 같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불쑥 찾아가도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 말이지요. 아무 말이 없어도 든든하게 여겨지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면, 숲은 더없이 미더운 친구입니다.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숲은 더욱 좋은 친구가 됩니다.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그늘과 바람을 선물처럼 전해주니까요.
가까운 곳에도 숲이 있어 시간이 될 때면 찾아가 숲이 주는 고마움을 누립니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숲에 들면 대번 느끼게 됩니다. 대단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하찮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여느 때처럼 숲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이 눈에 띕니다. 일정한 크기로 잘린 가지들이 길을 덮을 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가지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참나무 가지들입니다. 잘린 부분은 마치 실톱으로 자른 것처럼 매끈하고, 잘린 가지에는 막 자라기 시작하는 윤기나는 도토리 열매가 달려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사연을 압니다. 사연을 알기에 궁금한 마음보다는 감탄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대번 도토리거위벌레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때를 짐작한 도토리거위벌레가 이맘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어김없이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도토리거위벌레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는 7월 하순에서 8월 초순경입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는 습성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서 구멍 속에 산란관을 꽂은 뒤 그 속에 알을 낳기 때문입니다.
도토리 속에 알을 낳은 도토리거위벌레는 자기가 알을 낳은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자신의 주둥이로 잘라 땅에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토리 속에 낳은 알은 일주일가량의 시간이 지나면 유충으로 부화를 하고, 도토리 안에서 도토리의 과육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20여 일이 지나면 도토리에서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겨울을 납니다.
바로 거기에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유충이 나무 위에서 도토리 과육을 먹고 자란다면, 그래서 다 자란 뒤 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나무에서 떨어져 내려야 한다면, 아무리 벌레라도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도토리거위벌레는 때를 맞춰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가 도토리 속에 알을 낳고, 자신이 알을 낳은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잘라 땅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지를 잘라 떨어뜨리면 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이 낙하산과 같은 역할을 해서 땅에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 알을 보호하는 방식이지요.
그 모든 과정을 도토리거위벌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요? 도토리가 달리는 때를 어떻게 짐작하고 나무에 올라 알을 낳고, 그 가지를 잘라 떨어뜨리는 것일까요? 자신의 때를 묵묵히 따르는 벌레 앞에서 철없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라는 생각이 더욱 자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