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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거룩한 빵

[한희철 목사님] 거룩한 빵

by 한희철 목사님 2021.08.19

구약성경 <사무엘서>에는 사울의 칼날을 피해 광야로 도망을 친 다윗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과 시기와 증오에 빠진 사울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초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야로 도망을 친 다윗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놉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황급히 빠져나오느라 먹을 것을 챙기지 못했던 다윗은 성소를 찾아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구합니다. 아히멜렉에게는 보통 빵은 없었고, 거룩한 빵뿐이었습니다. 거룩한 빵이란 율법에 기록된 구별된 빵으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그 거룩한 빵을 다윗과 일행에게 내줍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지키는 이가 제사장입니다. 하지만 배고픈 이가 먹을 것을 찾을 때, 자신이 먹을 수 있고 먹어야 하는 빵을 기꺼이 내어주었던 것이지요.
아히멜렉이 건넨 빵이 거룩한 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흔쾌한 파격 때문입니다. 정한 규정을 따라 빵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길이고, 자신 또한 안전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함은 정해진 규정을 문자대로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정해진 규정을 사랑으로 깨뜨릴 때 빛을 발합니다.
우연히 큰 금덩이를 주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동네 한복판에 나와 조용히 혼잣말을 합니다. 금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그러면 돌려주겠다고 말이지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가 믿는 종교 경전에 의하면 남의 것을 주웠을 때, 적어도 세 번은 공지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전의 가르침을 문자대로 지키는 것은 훌륭해 보이지만, 오히려 가르침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쉬운 좋은 핑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한 교우가 찾아와 봉투를 건넸습니다. 무슨 일일까 싶어 물었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이삭까지 거두지 말라는 말씀이 자꾸만 마음에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결단을 내렸습니다. 매달 첫날의 수입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조용히 헌금으로 드려도 될 일이었지만 행여 자신의 마음이 바뀔까, 마음에 빗장을 지르듯 담임목사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건넨 봉투에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담겨 있었습니다.
거룩함은 율법이나 경전에 기록된 것을 문자대로 지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자대로만 하는 것은 훌륭해 보이지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변명이 될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익히 알면서도 그것을 사랑으로 깨뜨릴 때 비로소 계명은 온전해집니다.
지극한 사랑으로 거룩한 빵을 나누는 거룩한 마음이 이 땅 외진 곳 꼭 필요한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봉투를 앞에 두고 기도를 드리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