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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당나라 군대

[이규섭 시인님] 당나라 군대

by 이규섭 시인님 2021.08.20

최근 대한언론인회 박기병 회장과 경제 단체를 방문했다.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1층 로비로 내려왔다. 60대인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배웅을 하면서 박 회장을 향해 “태어나서 6ㆍ25참전용사는 처음 본다”고 말해 놀랐다. 태어나기 전에 6ㆍ25전쟁이 일어났으니 참전용사를 못 볼 수도 있겠다 싶다. 박 회장은 1951년 치열하게 백병전을 벌인 양구 백석산 전투 참전 용사다.
휴전선에 총성은 멈췄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다. 남과 북은 여전히 대치상태이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호전성을 드러낸다. 그런대도 우리 군은 긴장의 끈이 느슨해졌고 기강이 무너졌다. 한ㆍ미연합훈련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방어적 성격 훈련으로 축소됐다. 청해부대원들은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함정을 버리고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성추행에 부실급식 논란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사병이 중대장을 폭행한 막장 하극상도 일어났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참모총장을 불러내 장군 인사를 논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알려지기도 했다.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GOP 초소를 두드린 ‘노크 귀순’에 이어 북한 어선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삼척항에 들어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허술한 경계가 곳곳에서 노출됐다.
기강해이와 정신무장이 무너진 근본 원인은 주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슬그머니 삭제됐다.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경계를 해야 하는지 모호해졌다.
훈련 다운 훈련도 없다. 일선 부대 기동훈련은 지난해부터 코로나를 이유로 상당 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군 지휘부가 “훈련병 인권을 존중하라”고 시달한 뒤 그렇지 않아도 훈련병들이 말을 잘 안 듣는데 이런 지침으로 훈련시키기 더 어려워졌다. 옛날 호랑이로 통하던 훈련소 조교들도 훈련병들의 눈치를 보는 처지로 전락했다.
군은 훈련보다 민원 해결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아들을 군대로 보낸 부모들이 시시콜콜 민원을 넣으며 간섭한다. ‘학(學)부모’ 보다 무서운 ‘군(軍)부모’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 아이가 체력이 약하니 혹한기 훈련을 빼 달라”는 민원까지 넣는다니 병사들이 나태해질 수밖에. 이러니 오합지졸에 ‘당나라 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당나라 군대가 강군에서 오합지졸로 전락한 원인은 당 태종ㆍ고종에 이어 측천무후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엘리트 군부를 와해 시켰다. 그들을 왕권 위협의 적폐로 몰아세웠다. 정치세력에 의한 군대의 정치화로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측천무후가 등용한 문벌 귀족들의 무인 천대와 자기편 줄 세우기로 기강이 무너졌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군대가 되니 귀족들의 병역 기피는 늘고, 모병제로 전환되면서 군대의 질은 급락했다.
정치권의 인사개입, 자기편 줄 세우기로 군의 지휘체계가 와해되고 무능한 군대로 전락한 우리의 현실도 당나라 군대를 닮아 갈까 봐 우려된다. ‘당나라 군대’라는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우리 군에 ‘적’을 되돌려 줘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둬야 군대다운 군대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