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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근원적 목마름

[한희철 목사님] 근원적 목마름

by 한희철 목사님 2021.09.15

블레셋과 전투를 하던 다윗이 갑자기 물을 찾습니다. 다윗이 말한 물은 그냥 물이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 우물에서 길은 물입니다. 그런 다윗은 우리에게 근원적 목마름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다윗은 고향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얼마든지 다른 물이 있었겠지만, 다른 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오직 고향의 물로만 채울 수 있는 갈증이 있었던 것이었지요.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버지의 뒷모습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명절이 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고는 했습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셨지요. 아버지의 고향은 금강산 아래 이북 땅입니다. 식구들이 다 모였어도, 맛있는 음식이 상 위에 가득해도 아버지에겐 그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삶이 2대, 3대로 이어지다 보면 나중에는 우리 문화, 우리 언어가 낯설어집니다. 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은 이미 우리말을 모두 잊어버린 채 살아가지만, 그들이 여전히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노래입니다.
서투른 발음이라 해도 그들이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잊지 않고 부르는 모습을 보면 목젖이 뜨거워집니다. 그 노래는 두고 온 고국이 그리울 때면 젖은 목소리로 불렀던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근원적 목마름이 담겨 있는 노래였던 것이지요.
오래전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유고연방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부부가 선교지를 찾아 운전을 하던 중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부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차에는 선교사 부부의 어린 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사람들과 차량이 몰려오고 주변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딸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을 잃어버린 채로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대꾸도 반응도 하지를 않았습니다.
마침내 소식을 들은 한국영사관 직원이 서너 시간 후 도착을 했고, 영사는 어린 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얘야, 괜찮니?” 물었지요. 그때, 그제야 그 어린 딸은 영사 품에 안기며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같은 한국 사람, 우리말,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난 슬픔의 자리에서 그것만이 어린 딸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세 부하는 약 30km를 걸어 적진을 뚫고 베들레헴의 물을 길어오고, 다윗은 그 물이 부하들의 피와 같다며 마시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아무도 그 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모두가 목마름이 채워지는 해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근원적 목마름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물을 찾는 날이 된다면, 곧 맞게 될 추석은 참으로 우리의 큰 명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