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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까마귀의 말 참견

[권영상 작가님] 까마귀의 말 참견

by 권영상 작가님 2021.10.07

아침부터 길 건너 장 씨 아저씨네 고추밭이 떠들썩하다. 건너다보니 떠들썩한 목소리가 고추밭에 들어선 두 대의 파라솔 밑에서 울려 나온다. 장 씨 아저씨 부부다. 고추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이슬이 말라가는 고추밭을 흔든다. 파라솔 그늘에 숨어 익은 고추를 따는 모양이다.
장 씨 아저씨 춘부장께선 지난해에 돌아가셨다. 그래선지 통 보이지 않던 그 댁 며느리인 장 씨 아저씨 아내가 모처럼 나왔다. 젊은 분의 목소리가 무잎처럼 푸르고 싱그럽다.
나도 무밭의 벌레를 잡으려고 방에서 나와 무 이랑에 들어섰다.
“저번에 진주 엄마 말야. 고지서 봐 달래서 갔더니 글쎄 진주엄마 안경이 장장 여덟 개야! 여보, 놀랍잖아? 뭔 멋을 낸다고 여편네가 안경이 여덟 개야?”
숨죽이며 벌레를 찾는 내 귀에 장 씨 아저씨 아내분 목소리가 성큼성큼 울려왔다.
억양이 크다. 말이 시원시원하고 힘이 있다. 여자 목소리치고 우렁우렁하지만 정감이 간다. 누구라도 한번 들으면 속이 확 뚫릴 목소리다.
그 말끝에 장 씨 아저씨가 당연히 ‘무슨 안경이 여덟 개 씩이나?’ 하고 맞받았다.
아니, 나는 그 대꾸가 고추밭의 고추들이 엿듣고 되묻거니 했다. 아니 묵묵히 서 있는 고추밭 파라솔들이 대꾸한 줄 알았다. 왜냐면 나도 그 걸 되물을 뻔했으니까.
그만큼 그분은 말을 시원시원하게 했다.
“그 봐. 당신도 이상하지? 나도 이상했어. 그래 내가 뭔 안경이 이리 많냐 했더니 그게 글쎄 모두 돋보기라네. 글씨가 점점 안 보여 시내에 나갈 때마다 도수 높은 걸 사들였다는 거야. 여편네가 돈도 많지. 그거 살 거면 안과에 가 눈을 고쳐야 하잖아?” 그분이 그쯤에서 말을 끊고 숨을 돌리려 할 때다.
“맞구 말구! 암, 그래. 그래야 하구 말구!” 이번에는 건너편 산자락 나무숲의 까마귀들이 맞장구를 쳤다. 장 씨 아저씨 아내분의 말을 귀담아듣던 까마귀들이 참지 못하고 말 사품에 끼어든 거다. 까옷! 까옷! 까옷!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들을수록 그분의 말소리가 잡채 반찬처럼 차지고 맛있었다. 내가 그런데 월화수목금토일요일을 안다는 까마귄들 안 그럴까. 그건 까마귀들의 그런 대꾸가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 정신 나간 것아! 눈을 고치고 고지서 읽을 생각을 해야지!” 이야기가 그쯤 흘러가자, 숲속 까마귀들이 ‘옳거니, 옳거니!’ 이야깃 속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까마귀들 말참견에 성이 난 건 제가 할 대꾸를 빼앗긴 장 씨 아저씨였다.
“야, 이누머 새끄들! 씨끄럽게 자꾸 울래?”
키 작은 장 씨 아저씨가 불쑥 일어나 손을 들고 까마귀들을 을러메었다.
“너는 빠져! 빠져! 빠지라구! 까옷! 까옷! 까옷!” 까마귀들이 야유하듯 울며 날아올랐다.
사건이 이제는 까마귀와 장 씨 아저씨의 대결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진주 엄마는 안과에 갔는지, 읽어달라는 고지서는 읽어주었는지 더는 알 수 없이 장 씨 아저씨 아내분의 말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장 씨 아저씨 춘부장께서 밭에 나오실 때 장씨 아저씨는 고추밭이 들썩거리도록 주로 유행가를 메들리로 틀어댔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완전 생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