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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죽은 아까시나무를 위한 진혼곡

[강판권 교수님] 죽은 아까시나무를 위한 진혼곡

by 강판권 교수님 2021.10.11

모든 생명체의 꿈은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천수를 누리는 생명체는 아주 드물다. 나무 중에서도 천수를 누리는 존재도 있지만, 수난을 겪는 나무도 있다. 나무 중 인문학적으로 천수를 누리는 존재는 상수리나무다. 참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상수리나무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쓸모없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상수리나무가 장수한 얘기는 중국 전국시대 장주(莊周)의 작품인 『장자(莊子)ㆍ인간세(人間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무 중 대표적인 것은 콩과의 갈잎큰키나무 아까시나무이다. 아까시나무는 그동안 자신과 다른 이름인 아카시아로 불리다가 최근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찾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카시아로 부른다. 아까시나무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베고 대신 심었다는 누명을 쓰고 살다가 해방 이후에는 소나무를 죽인 범인으로 몰려 아직도 까닭 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나이가 많은 아까시나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해발 300미터 정도의 구암산과 함지산에는 꽤 많은 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 아까시나무에 꽃이 피면 황홀해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얼마 전 산에 올랐더니 길가의 아까시나무가 잘려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얼마 전 비바람에 넘어져 생을 마감한 것이다.
나는 잘린 아까시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발걸음을 멈추고 아까시나무의 나이테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나이테를 하나하나 세어보니 30살이었다. 아까시나무는 30살의 삶을 살다 죽음을 맞았으니, 천수를 누리지 못한 셈이다. 아까시나무의 천수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 100살 정도의 아까시나무가 살고 있으니 죽은 아까시나무는 분명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온대 지역의 나무 나이테는 1년 단위로 생기기 때문에 나이테를 통해 나무의 삶을 알 수 있다. 나이테는 중심부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나이테의 간격을 살피면 1년마다 나무의 삶을 알 수 있다. 죽은 아까시나무의 나이테를 보니, 15살 정도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살다가 그 이후에는 좀 심든 세월이었다. 나이테의 폭은 나무의 삶이 어느 정도 힘들었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다. 죽은 아까시나무의 나이테 중심부는 폭이 넓어서 나름 좋은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아까시나무가 힘든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아까시나무가 살던 곳 주변을 등산로로 만들면서였다. 이곳 아까시나무는 등산로를 내자 뿌리를 제대로 뻗지를 못하고 늘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했다. 아까시나무는 등산로가 생긴 후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는 모든 힘을 균형 잡는데 쏟아야 했다.
아까시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30년의 삶을 마감했다. 지나가는 그 누구도 아까시나무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나는 선명한 아까시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도했다. 그동안 죽은 아까시나무가 제공한 꿀만 해도 셀 수 없을 테지만, 지금도 아까시나무의 꿀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카시아꿀’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