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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삶과 죽음의 경계 ‘도흔트 수로’

[이규섭 시인님] 삶과 죽음의 경계 ‘도흔트 수로’

by 이규섭 시인님 2021.10.26

모레(10월 24일)가 ‘국제연합일(United Nations Day)’이지만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간다. 유엔 창설을 기념하여 1945년에 제정됐으며 우리나라와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유엔은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을 즉각 파병하여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에 나섰다. 전쟁 동안 22개 참전국의 젊은이 5만 8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48만여 명이나 된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유엔의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유엔에 가입되기 전인 1973년부터 3년간은 공휴일이었다가 기념일로 바뀌어서 그런지 그 뜻마저 퇴색해가는 느낌이다.
1991년 남북 동시 유엔 가입을 계기로 많은 기여를 했다. 유엔의 각종 기구를 통해 원조 받던 나라에서 제공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평화 유지군을 파견했고,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여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부산UN공원은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역만리 타국 대한민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과 귀중한 생명을 바친 전몰장병의 위대한 얼을 담아 조성한 것이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 묘지다. 현재 유엔군 용사 2311기(부부 합장자 등 사후 안장 포함)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호주ㆍ캐나다ㆍ프랑스ㆍ네덜란드ㆍ뉴질랜드ㆍ노르웨이ㆍ남아공ㆍ터키ㆍ영국ㆍ미국과 유엔군에 파병된 한국인 등 11개국 출신이다. 한국은 이 묘역을 유엔에 영구 기증했으며 관련 당사국들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유엔묘지에는 유일하게 장군 한 분과 한국 민간인 한 분이 안장되어 있다.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군 제2군수사령관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그의 아내 한묘숙 여사다. 전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아내와 함께 전쟁고아들을 보살폈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위트컴 장군의 유언에 따라 1982년 유엔 묘지에 안장됐다. 2017년 그의 아내가 별세한 뒤 합장했다.
호주군 소속 케네스 하머스톤 대위(당시 34세) 부부도 이곳에 합장됐다. 하머스톤 대위는 결혼 3주 만인 1950년 10월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했다. 당시 간호 장교로 일본에 머물던 그의 아내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60년 만인 2010년 별세하자 남편 곁에 묻혔다.
유엔 묘지를 찾을 때마다 가장 가슴 저린 공간은 ‘도흔트 수로(水路)’다. 전몰 용사 중 최연소인 열일곱 살의 호주 출신 도흔트(J.P.Daunt) 일병을 기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물길을 녹색지역과 묘역 사이에 조성해 놓았다. 꽃다운 나이에 꽃잎처럼 숨진 그의 죽음에 절로 숙연해진다.
유엔기념공원은 코로나 장기화로 참전용사 유족과 전우들의 한국 방문길이 막히자 메일 등으로 헌화 요청을 받으면 ‘대리 헌화’를 해주고 있다. 해마다 11월 11일 11시 11분 추모 사이렌이 울리면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너씨의 제안으로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의 묵념이 시작됐다. 그는 “한국전 참전이 내 인생의 가장 자랑스런 기여”라고 했다. 11월 11일은 1차 세계대전 종전일로서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국들은 이날을 현충일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