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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추억의 소환

[이규섭 시인님] 추억의 소환

by 이규섭 시인님 2021.10.29

강릉대도호부 관아 안 천막극장. 강릉을 무대로 촬영한 영화 ‘봄날은 간다’가 스무 해를 훌쩍 넘겨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 다시 선보였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분)의 사랑 이야기가 풋풋하게 펼쳐진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명대사의 기억처럼 영화 상영에 앞서 이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 등 스태프진 8명과 배우 유지태가 토크쇼를 펼쳤다. 작업을 함께하며 “그때 참 행복했다”며 추억을 소환한다. 참석하지 못한 이영애는 영상 인사를 했다. 어렸을 적 시골 공터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에서 활동사진을 보던 시절의 추억도 덩달아 소환된다.
강릉은 영화의 바다에 푹 빠졌다. 10월 22일부터 열흘 동안 120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은 ‘페이지를 넘겨라!(Turn the page!)’다. 코로나로 지친 시간을 책장 넘기듯 뒤로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강릉국제영화제와의 인연은 김동호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1회에 이어 올해도 초정 받았다. 지난해는 코로나 감염 확산으로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 기자회견에 앞서 필자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대한언론’(2021년 10월 호) 기고를 통해 강릉영화제의 정체성을 소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직ㆍ간접적으로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영화제들이 경쟁하듯 늘었다. 2016년엔 충무로뮤지컬영화제와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창설됐다. 2017년에는 서울무용영화제, 2018년에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충북무예액션영화제와 강릉국제영화제가 각각 출범했다. 영화제는 지역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도시 브랜드를 국내외에 알리는 홍보 효과가 있어 지자체가 선호한다. 문제는 창설하기는 쉬워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재정기반의 구축이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영화제 운영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보조금과 기업 등의 협찬금으로 충당하고 일부는 극장 관람료 등 자체 수입으로 채운다. 김 이사장이 창설하여 성공 시킨 부산국제영화제는 발로 뛰며 재정기반 구축에 열성을 쏟았다. ‘지원은 하되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게 성공 요인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정체성’(正體性) 즉 ‘색깔’이 뚜렷해야 성공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제작을 지원한다’는 목표와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그램과 프로젝트가 돋보였다. 강릉국제영화제는 문학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집중 조명하는 ‘문학영화제’로 특화시켰다. 강릉은 신사임당과 율곡 모자(母子),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향(文鄕)이다.
또 다른 차별화 전략은 ‘강릉포럼’ 운영이다. 올해는 로테르담, 우디네(이탈리아), 후쿠오카, 말레이시아 등 10여 명의 집행위원장들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매년 4, 50명 이상의 영화제 책임자들이 강릉을 찾게 된다면 강릉포럼은 영화제의 ‘다보스포럼’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지난 30여 년간 100개가 넘는 세계 영화제를 방문한 김 이사장의 경륜이 녹아 있는 영화제가 새로운 페이지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