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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코로나 시절도 끝나가는 느낌이다

[권영상 작가님] 코로나 시절도 끝나가는 느낌이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1.11.05

“들어와 봐유. 안 사도 괜잖아유우.”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옷 가게 앞에서 호객을 한다. 그의 손엔 ‘착한 값 5,000원’이 붙은 여성용 블라우스가 들려있다. 가게 앞길은 시장통으로 막 들어가는 입새이고 꽤나 넓은 통로다. 길이 비좁도록 인파가 북적인다.
옷 가게 사내는 장사꾼답게 그 인파를 그냥 보내기 아쉽다. 그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위해 유머 있는 옷차림으로 유들유들하게 사투리를 구사한다. 나는 그가 들어와 보라는 가게 안을 얼핏 들여다본다. 가을 옷들이 가득 걸려있다.
“아니, 괜잖아유. 그냥 들어왔다 가유. 수면 바지 남자 거 여자 거 다 있구먼유.”
사내의 편안한 목소리에 끌려 일없이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아 나와 생뚱맞게도 맞은편 노점에서 파는 호떡을 샀다. 호떡 수레에 둘러선 사람들 틈에 나도 끼어들고 싶었다.
“아니 안 사도 괜잖아유, 안 삼 뭐 어때유. 한번 들어와 봐유.”
남대문 시장은 입구에서부터 붐빈다.
토요일, 모 재단에 볼일이 있어 일을 마치고 나왔다. 곧바로 전철을 타고 갈까 하다 걷기로 했다. 갈볕의 유혹 때문이다. 볕이 따끈하고 달콤하다. 올가을은 정말 가을다운 날이 너무도 짧았다. 지질거리는 긴 비와 길고 긴 흐린 날이 가을을 망쳐놓다시피 했다. 그러니 요만한 볕에도 내 마음이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 이 길은 지난날 나의 오랜 출퇴근길이기도 하다.
4호선 전철을 타고 회현역에 내리면 공덕동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그 버스를 타고 만리동 언덕에서 내리면 직장이 그 근처다. 이 출퇴근길은 항상 붐빈다. 누군가의 간섭 없는 호젓한 길도 탐나는 길이지만 북적대는 이 길도 사는가 싶은 길이어서 탐난다.
그때만 해도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면 남대문 시장에 종종 들렀다. 어깨에 메는 가방을 사거나, 모자나 등산용품, 기모 처리가 된 추리닝, 아니면 시장 음식점에 들러 순댓국을 먹거나 가끔 친한 벗을 불러 출출한 김에 선짓국을 먹었다. 웬만한 데선 먹기 힘든 음식이라선지 시장통에 들르면 꼭 그런 음식이 땡긴다.
시장은 파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 간의 밀고 당기는 흥정이 있어 좋다. 때 되면 머리에 탑처럼 주문 음식을 쌓아 이고 배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인파 사이로 짐 자전차를 타고 가는 이들의 곡예 같은 운전이며 호객술을 흥겹게 지켜보는 것도 좋다.
벚꽃이 피거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 남산 소월길을 걷는 것도 좋다. 남대문 시장을 나와 힐튼 호텔과 남산도서관을 지나 한남동으로 걸어 내려오면 그쯤에서 나는 버스를 탔다.
코로나가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한산한 줄만 알았던 남대문시장이 그 옛날의 시절처럼 붐빈다.
호떡을 먹으며 모자 가게에서 이것저것 모자를 써보고, 장갑 가게에 들러 일없이 장갑 구경을 하다가 숭례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 미용재료 가게와 마주쳤다. 문득 사고 싶었던 이발기가 생각났다. 무턱대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웬만한 미용실에서도 쓴다는, 누구나 쉬운 가격으로 쓸 수 있다는 주인이 권해주는 이발기를 하나 샀다. 이발 가위와 틴닝가위도 집에 갖추어 놓았으니 이젠 머리 걱정이 없게 됐다.
사람들 틈에 섞여 시장길을 걸어 나온다. 이제 길고 지루했던 코로나 시절도 끝나가는 느낌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정든 얼굴들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