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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단양쑥부쟁이의 환생

[이규섭 시인님] 단양쑥부쟁이의 환생

by 이규섭 시인님 2021.11.05

조락의 계절이다. 동네 부근 야산 매봉산의 낙엽 깔린 능선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그 길에 조성한 야생화는 자생력을 잃고 대부분 사라졌다. 소나무와 전나무 숲 아래 뿌리내리기엔 생육 조건이 맞지 않았다. 벌개미취만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며 살아남았다. 연보라색 꽃잎이 햇살을 머금고 수줍게 웃는다. 벌개미취는 햇빛 드는 벌판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야산에 흔한 쑥부쟁이도 연보라색 꽃으로 벌개미취와 비슷해 헷갈린다. 쑥부쟁이는 잎이 작고 톱니가 있는 반면, 벌개미취는 잎이 길다. 잎의 크기와 톱니를 확인해가며 꽃을 감상 하기란 쉽지 않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벌개미취, 쑥부쟁이와 함께 3대 들국화로 꼽히는 구절초(九節草)는 청초한 흰색에 연분홍색도 있어 색깔로 쉽게 구분된다. 9∼10월에 줄기 끝에 꽃이 한 송이씩 핀다. 꽃대가 올라올 무렵엔 붉은 기운이 감돌다가 차차 맑은 흰색으로 변한다. 구절초 잎은 쑥처럼 갈라져 있어 식별하기 쉬운 편이다. 음력 9월 9일 즈음이면 줄기가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해서 구절초다. 부인병에 좋다고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안도현 시 ‘무식한 놈’ 전문>
길섶에 흔한 식물들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사물의 구분과 사안의 판단이 둔감한 나도 ‘무식한 놈’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가을철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노란색 국화인 산국과 감국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산국은 이름 그대로 산에 피는 국화다. 꽃이 작고 다닥다닥 피어난다. 감국은 산국 보다 꽃잎이 크다. 산국 잎을 ○○○어보면 쓴맛이 돌고 감국 잎을 ○○○으면 단맛이 살짝 돈다는 데 잎을 ○○○어가며 구분해 보진 않았다.
‘쑥부쟁이’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자리에서 배고픈 동생들을 위해 돋아났다는 슬픈 전설이 서렸다. 울릉도에서는 부지깽이나물이라 하여 이른 봄 식탁에 오른다. 쑥부쟁이는 개쑥부쟁이와 가새쑥부쟁이로 갈리고 개쑥부쟁이는 꽃을 감싸는 총포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산에서 흔히 보는 쑥부쟁이는 대부분 개쑥부쟁이다.
멸종위기 2급 식물로 귀한 대접을 받는 단양쑥부쟁이는 꽃 모양은 별을 연상시키고 잎은 실처럼 가늘고 길다. 충북 단양에서 경기 여주까지 남한강 변 모래땅에 주로 서식한다. 10여 년 전 4대강 사업 공사를 할 때 서식지가 사라진다고 환경단체에서 반대하여 4대강 반대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꽃이다. 공사가 중단됐다가 쑥부쟁이 무리를 여주 강천섬으로 옮긴 뒤 공사가 재개됐다.
최근 여주보 하천 인근 등에서 단양쑥부쟁이가 대거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보도다. 10년 전 4대강 공사 때 파낸 준설토를 쌓아둔 장소로 진흙 속에서 싹을 틔운 것으로 추정한다. 주변엔 멸종위기종 서식지라는 푯말도 보호 펜스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데, 환경 파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환경단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