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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믿음: 삼척 갈전리 당숲

[강판권 교수님] 믿음: 삼척 갈전리 당숲

by 강판권 교수님 2021.11.08

믿음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이다. 한 사회가 신뢰를 상실하면 어떤 정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당숲은 전통시대 사람들의 믿음을 이해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전국 곳곳에는 아직 당숲이 꽤 많이 남아 있지만 강원도 삼척 갈전리 당숲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천연기념물 숲이다. 당숲은 자연생태이면서 사회생태의 기초이다. 왜냐하면 당숲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당숲은 마을 입구에 존재한다.
갈전리(葛田里)는 콩과의 갈잎덩굴성 칡이 많아서 붙인 지명이다. 칡과 관련한 지명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하다. 산이 많아서 칡도 많이 살기 때문이다. 이곳 당숲은 경북 영양을 본으로 하는 남 씨의 집성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전리 당숲에는 나이 400살에 이르는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릅나무를 비롯해서 참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졸참나무, 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음나무,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 등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느릅나무가 상징 나무이다. 1982년 11월 9일 느릅나무를 천연기념물 제272호로 지정했다가 2012년 10월 10일 당숲으로 명칭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곳 느릅나무(Ulmus davidiana var. japonica (Rehder) Nakai)는 높이 20.5m, 둘레 3.7m에 이른다. 갈전리 당숲 느릅나무는 영양남씨가 300년 전 이곳에 거주하면서 심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곳에 살던 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동네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당숲 속에 성황당은 당숲이 갈전리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당숲의 나무 종류는 모두 강원도를 대표하는 나무들이다. 그중에서도 졸참나무(Quercus serrata Thunb. ex Murray)는 관심을 끌 만하다. 참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졸참나무는 참나무 종류 중 대표적인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의 열매와 비교해서 가장 작아서 붙인 이름이다. 당숲의 졸참나무는 다른 여러 종류의 참나뭇과 종류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황식물이다. 그래서 당숲의 졸참나무는 갈전리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나는 난생처음 갈전리 당숲을 만났을 뿐 아니라 만나는 과정도 가장 힘들었다.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민둥산을 넘어서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민둥산 고개만큼 힘든 고개를 넘은 적이 없었다. 특히 서서히 어둠이 깔리는 시간인 데다 오로지 혼자서 고개를 넘은 탓에 두렵기조차 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을 흥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숲도 삼척과 정선 사람들의 힘든 삶을 치유하는 숲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좋은 일이든 좋지 못한 일이든 당숲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누구든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면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당숲은 마을 사람들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인간이 사람이 아닌 나무를 멘토로 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간이 예부터 나무를 멘토로 삼은 것은 사람보다 오래 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얘기든 무조건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갈전리 당숲을 비롯해서 전국의 당숲은 그 어떤 것보다 치유 효과가 크다. 당숲의 이 같은 치유 효과는 숲을 보존해야 할 중요한 이유이자 우리 민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남(指南), 즉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