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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말 한마디와 천 냥 빚

[한희철 목사님] 말 한마디와 천 냥 빚

by 한희철 목사님 2021.11.10

생각해 보면 말은 참 무섭습니다. 발도 달리지 않은 것이 금방 천리 길을 갑니다. 발이 네 개가 달린 말(馬)이 쉴 새 없이 내달려도 입에서 입으로 번져가는 말(言)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말은 바다도 쉽게 건너고 산도 가볍게 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말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선물처럼 남아 약해진 나를 지켜주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세월이 지나가도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덧이 나서 누군가의 내면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관용어구’라 부르는 말들이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그 단어들의 의미만으로는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어구(語句)를 의미합니다. 사용된 단어의 뜻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것의 상관관계나 배경을 모르면 도무지 뜻을 짐작할 수가 없는 말들입니다.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 없도록 아무렇게 쓴 글씨를 두고는 ‘괴발개발 썼다’고 합니다. 흔히 ‘개발새발’로 알고 있지만, ‘괴발개발’은 ‘고양이와 개의 발’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고양이와 개가 발로 쓴 글씨이니 얼마나 가관이면 그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싶습니다.
‘미주알고주알 캐묻다’ 할 때의 ‘미주알’은 창자의 끝부분을 말하고, 고주알은 미주알에 맞춰 붙인 뜻 없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주알고주알’은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가슴에 든 멍’은 물리적 충격으로 가슴에 생긴 퍼런 멍보다는 약으로는 달랠 수 없는 가슴의 아픔이나 상처를 말하고, ‘귀가 얇다’는 귓바퀴의 두께가 아니라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그대로 잘 믿는 성향을 말합니다.
우리말로 된 관용어구 중 ‘엎지른 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바로잡거나 돌이킬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물론 물을 엎지른 곳이 탁자나 방바닥이면 어느 정도 다시 담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맨땅이거나 수풀이거나 모래사장이라면 사정은 다릅니다. 다시 담을 방법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엎지른 물’보다도 어떤 일의 소용없음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 ‘내뱉은 말’입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거둬들일 수가 없습니다. 엎지른 물은 걸레로 짜서라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길은 세상에 없습니다. 한 번 내뱉고 나면 거둬들일 수가 없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말은 충분히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천 냥 빚을 굳이 지금의 액수로 환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빚이라도 마음이 담긴 한 마디가 그 빚을 갚게 해준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그 익숙한 속담을 대할 때면 마음에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사람이 더 많을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사람이 더 많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천 냥 빚을 반복해서 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