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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 무숙이타령

[김민정 박사] 무숙이타령

by 김민정 박사님 2021.12.06

앙상한 바람의 길 혼자 또 닦고 있는
감나무 잔가지에 떠오른 보름달처럼
이생을 뒤집어놓고 내 사랑 보듬는다

억새꽃 형상으로 흔들린 마음이지만
열두 마당 서러움 앞섶에 숨긴 채로
바스락, 일어섰다가 더 낮게 눕는 밤

무언극 주연 같은 저 달 바라보면서
불면이 숨어 사는 첩첩한 온몸 펼쳐
지난날 헛웃음들을 꼼꼼히 읽어보고

세상에 서성이는 비문의 바람소리에
봄날이 올 때까지 긴 어둠 되삼키며
남몰래 벼린 욕망을 둥글게 휘감는다
- 이상구, 「무숙이타령」 전문

‘무숙이타령’이란 판소리의 ‘왈자타령曰者打令’을 말한다. 서울의 왈자 무숙을 주인공으로 하는 판소리로 열두 마당 중의 하나다. 무숙이타령은 현재 창으로 전승되지 않고 있으며 사설의 정착으로 간주되는 「게우사」(박순호 소장 필사본: 1890년 필사)가 유일본으로 남아 있다. 언제 판소리로 창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이 작품이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연행되었음을 알려주는 가장 이른 기록은 송만재의 「관우희」(1843)이라고 한다.
이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1940)에서 열두 마당의 하나로 꼽혔다. 「무숙이타령」은 의양이 다른 인물들의 도움을 얻어 무숙의 방탕한 마음을 바로잡는 이야기가 중심이므로 공모(共謀)에 의한 탕아 길들이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공모에 의해 주인공을 망신시킨다는 점에서 『배비장타령』과 일치하나 공모의 주체나 망신의 목적이 다르고, 『이춘풍전』과 비슷하나 역시 공모의 주체는 다른 판소리이다.
「무숙이타령」이란 제목의 시조는 판소리에서 제목을 빌려온 작품이다. 생의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첫수에서는 삭막의 초겨울 밤 감나무 가지에 떠오른 달을 보며 상념에 잠긴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이생을 뒤집어놓고 내 사랑 보듬는다’고 한다. 바람의 길을 혼자 또 닦고 있는 보름달처럼 말에서 외로움이 느껴진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는 길이라 외로울 수밖에 없지만, 그런 생을 뒤집어 놓고 사랑을 보듬는다고 한다.
둘째 수에 오면, 억새꽃이 바람에 늘 흔들리듯 삶은 늘 흔들리며 가는 것이다. 누군들 흔들리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있는가. 살아간다는 것은 기쁨도 서러움도 모두 끌어안는 것이고, 그러면서 또 바스락이며 일어서고, 다시 절망하여 더 낮게 눕기도 하는 날들을 말하고 있다. 김수영의 ‘풀’이란 작품이 생각나기도 하는 부분이다.
셋째 수에 오면 자성하는 모습이 보인다. 무언극 주연 같은 달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자신의 헛웃음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허방짚은 날들을, 허세 부린 날들을, 헛헛했던 세월들을 더듬어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다.
마지막 수의 ‘비문의 바람소리’란 말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비문祕文의 바람소리로 봤을 때, 화자가 바라는 것을 화자는 어려움과 괴로움, 즉 어둠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남몰래 벼린 욕망’인 것이며 그것을 ‘둥글게 휘감고’ 있는 것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을 돌아보며 서운했던 일들과 헛웃음을 웃었던 날들을 돌아보며 어둠을 인내하며 이루고 싶은 욕망, 소망들을 다시 둥글게 휘감아보는 연말이다. 올해 마지막 남은 날들은 부족했던 일들, 서운했던 일들을 마감하고 새해에는 더욱 힘차게 열어갈 날들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