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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물질적 행복

[이규섭 시인님] 물질적 행복

by 이규섭 시인님 2021.12.10

소확행(小確幸)이 생활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1986년 무리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소개된 이 말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35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화두로 존재한다는 건 소소한 행복에 대한 가치의 반영이다.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평소 먹고 싶은 김치전을 만들거나, TV 영화를 보며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원 플러스 원으로 평소 좋아하던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서로 바빠 데면데면했던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가족의 유대와 끈끈함을 확인하는 것은 소중한 행복이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으니 소확행이다.
필자는 일주일에 닷새 광화문에 위치한 친목단체 사무실에 나가며 생활의 리듬을 유지한다. 매월 타블로이드판 24페이지 분량의 회보를 만들며 언론현장 시절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끌어내며 녹슬어가는 의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활동할 공간이 있는 것만도 소확행이다.
80대 중반의 언론계 선배는 주민센터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강좌를 들으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기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취감을 맛본다. 강의실에 나가 동년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쁨은 덤이다. 80대가 누리는 소확행이다. 거창한 꿈을 ○○○지 않고 소확행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은 현명하다. 그 속에서 행복의 요소를 발견하고 즐기는 자체가 탁월한 삶의 선택이다.
하지만 소확행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취업 사이트에서 실시한 ‘행복 키워드’ 조사에서 응답자의 10명 중 7명 이상이 소확행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가끔 오는 큰 행복 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에 만족감이 더 크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행복감을 얻어서’라고 응답했다. 소확행에 공감한다면서도 응답자의 82%가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58.5%)와 생활비 마련이 어려워서(32.3%)라고 한다.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크고 본질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는 여론조사가 최근 발표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올해 전 세계 17개 선진국 1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다른 나라 응답을 평균 내보면 1위가 가족, 2위가 직업, 3위가 ‘물질적 행복’인데 우리만 순위가 바뀌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득이 줄면서 생활이 팍팍해진 탓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속담엔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이웃을 돌아보게 되고 나눔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콩 한쪽을 나눠먹으면 둘 다 허기를 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