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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자충수와 덜컥수

[한희철 목사님] 자충수와 덜컥수

by 한희철 목사님 2021.12.15

텔레비전을 보다가 재미있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세돌 바둑기사가 나오는 광고였습니다. 표정마저도 바둑돌을 닮았지 싶은 익히 아는 얼굴,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자신의 바둑 기풍과는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그가 어떤 광고를 하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악수는 없다’는, 광고에 나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따라 ‘쎈돌’이라 불렸던 이가 하는 말이어서 더욱 연관성을 가지고 무게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광고에서 말하는 ‘악수’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잘못 두어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나쁜 수를 의미하는 ‘악수’(惡手)가 아니었습니다. 인사, 화해, 감사 따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사람이 각자 한 손을 내밀어 마주잡는 ‘악수’(握手)였습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만든 공익광고였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 악수를 청하지 말자고, 주먹 악수든 팔꿈치 악수든 모든 악수를 삼가자는 권면이었습니다. ‘악수는 없다.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악수는 없다’ ‘목례는 있다.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목례는 있다’ 서로 대조적인 말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빙긋 웃으며 이세돌 씨가 전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악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진 생각이 ‘악수’였습니다. 물론 바둑을 둘 때의 ‘악수’(惡手) 말이지요. 바둑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바둑에서의 대표적인 악수는 자충수와 덜컥수 아닐까 싶습니다. 자충수(自充手)란 말 그대로 자충(自充)이 되는 수입니다. 즉 자기 돌을 자기가 지은 집 안에 놓아 스스로 자기의 수를 줄이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스스로 손해를 부르는 경우지요. 특히 대마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사활을 두고 수 싸움을 할 때 자충수를 두는 것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자충수 하나로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덜컥수 또한 말 그대로 덜컥 놓는 수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수이지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놓는 수의 대부분은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하긴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도 있으니, 이래저래 덜컥수를 피하기는 어려운 노릇인가 봅니다.
바둑 한 판은 인생과 유사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한 걸음씩 살아가듯이 바둑도 돌 하나씩을 두어갑니다. 우리가 어느 선택을 하든지 자유인 것처럼 돌을 놓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어디에 두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걸음과 걸음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처럼, 돌 하나하나가 모여 한 판의 승부가 됩니다.
바둑에서 그러하듯이 인생에서도 자충수와 덜컥수는 피해야 합니다. 분명 자신에게 이롭다 여겨 행하는 일이지만, 결국은 자충수가 되고 마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옥죄는 결과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경우입니다. 덜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몹시 불안정합니다. 때로는 쉽게 내린 결정으로 큰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자충수와 덜컥수를 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