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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벼랑에 선 퇴직 남편

[이규섭 시인님] 벼랑에 선 퇴직 남편

by 이규섭 시인님 2021.12.17

황혼 이혼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황혼(黃昏) 이혼’이란 20년 이상 산 부부의 이혼을 뜻한다. 남편의 은퇴 시기가 되면 주택담보 대출은 대부분 갚고 자식들은 졸업 후 취업해서 나간다. 남편은 은퇴 후 아등바등 살아온 날들을 접고 취미생활을 누리며 여유 있는 노후를 꿈꾼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참았지만 남편의 은퇴 후 온종일 같이 있을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은퇴가 황혼 이혼의 계기가 되고 남편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통계청은 지난해 부부 3만 9700쌍이 갈라섰고, 올해도 9월까지 3만 1300쌍이 부부의 연을 끊었다고 밝혔다. 이런 추이라면 올해 황혼 이혼 부부는 사상 처음으로 4만 쌍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 언론사가 50대 남녀 22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변의 황혼 이혼에 대해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5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살면서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65%가 “그렇다”고 응답해 황혼 이혼은 늘어날 확률이 높다.
일본은 황혼 이혼이 빅 이벤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황혼 이혼을 숙년 이혼(熟年 離婚)이라고 하며 70% 이상 여성들이 이혼을 제기한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생활력이 강해지면서 생긴 변화다. 일본은 이미 2019년에 황혼 이혼 건수가 4만 쌍을 넘었다.
일본의 1급 노후 설계사 요코테 쇼타(横手彰太)씨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성은 은퇴 후 편안한 삶을 보내기를 기대하지만, 아내는 “내 인내심이 바닥났다”며 이혼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의외로 많은 남편들이 전업주부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감히 이혼을 생각하겠느냐”고 생각하지만 “황혼 이혼을 결심한 아내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못 박는다. 아내는 그동안 말은 안 했어도 오랫동안 쌓인 미움이 생각 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남편은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오랜 세월 함께 살다가 헤어진 노부부가 이혼 도장을 찍고 난 뒤 3년이 지나면 여성은 이혼 쇼크를 극복하지만 남성은 좀처럼 이혼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성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다소 고통을 겪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차츰 개선된다. 이와는 달리 남성들은 정신적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남성은 건강이나 생활관리가 잘 안 되고, 사회와 단절된 독거노인이 되어 고독사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니 남편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황혼 이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의 전문가들은 소원해진 부부 사이를 개선하려면 반려동물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반려동물이 공통 화제나 관심사가 되어 대화가 늘어나게 되고 은퇴 후 부부만 사는 집안이 밝아진다는 것. 사이가 좋은 부부들은 대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반려동물이 노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역할을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배우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서로 챙겨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슨해진 부부의 연을 잇게 해주는 동아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