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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노인은 서럽다

[이규섭 시인님] 노인은 서럽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1.12.24

하루에 한두 번은 QR코드를 찍는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거나 커피숍 또는 저녁 주점에서도 QR코드로 인증한다. 처음엔 서툴고 잘 뜨지 않거나 인증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 등 불편했으나 이제는 휴대폰을 폼 나게 흔들어 접속하며 속으로 내뱉는다.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마”
방역패스가 의무화된 지난 13, 14일 이틀 동안은 QR코드 먹통으로 접속이 제대로 안 되고, 질병관리청의 백신 접종 증명 앱 오류까지 겹쳐 큰 혼란을 겪었다. 연락처 수기(手記)가 금지됐고, 자영업자들은 휴대폰 공기계나 태블릿 PC 등 QR코드 인식용 기계를 미처 설치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방역 패스를 어기면 고객은 10만 원, 업주는 15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방역패스 시행으로 현장 혼란이 빚어지고 경기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황에서 방역강화 방침은 소상공인들에게는 치명타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일상에 큰 불편을 겪는다.
가뜩이나 정보 격차로 노년층이 사회와 단절되는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방역패스 시행으로 더욱 심화됐다. 방역패스로 사용 가능한 것은 질병관리청 쿠브(COOV) 앱이나 전자출입명부(네이버, 카카오, 토스)의 전자 증명서, 신분증에 붙인 예방접종 스티커, 2차 접종 후 접종 기관에서 받은 종이 증명서 등이다. 미 접종자는 PCR 검사 음성 결과가 담긴 휴대폰 문자나 종이 증명서를 내야 한다. 종이 증명서의 경우 신분증도 함께 보여 줘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인터넷 사용이 미숙한 노년층에게 전자 증명서 발급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접종 이력이 증명되는 개인 QR코드를 발급받으려면 핸드폰 인증 등 본인 인증 절차가 별도로 필요한데 모바일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따라 하기 어렵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70세 이상 노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40.3%이다. 이는 70세 이상 노인 10명 중 6명은 인터넷을 못 쓴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못 쓰는 노인에게 QR코드 전자 증명서를 사용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70세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2018년 기준 37.8%로 전체 연령 평균인 89.4%에 훨씬 못 미친다. 사전준비나 대비책 없이 정책을 밀어붙여 노인들의 소외감은 깊어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중은행 점포가 줄어들면서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은 서럽다. 필자도 집에서 가까운 거래은행 점포가 연말까지 운영한 뒤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문자로 받았다. 버스로 몇 정거장 가는 지점과 합친다니 불편한 것은 뻔하다. 5개 시중은행에서는 올 한 해만 261곳의 지점이 문을 닫았다. 내년 1월에도 최소 72개 지점이 영업중단을 예고했다.
은행들은 대면 점포를 줄이는 대신 비대면과 디지털화에 역량을 쏟으며 무인 디지털 점포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간단한 입출금 업무마저 대면 창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령층만 사각지대로 내몰려 폐점 반대 운동까지 펼치는 실정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노인들은 디지털 과속에 뿔났다.